1960년대 천왕봉 정상은 지금과는 당연히 달랐을 겁니다.
게다가 정상 바로 남측에도 지금은 전혀 의외일 건조물이 있었습니다.
돌로 지은 이 움막이 있는 곳이 아마 천왕봉 남쪽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산청 쪽 정상 바로 못미쳐 반반한 곳인 것 같은데, 하도 오래전에 가보아서 가물가물 합니다.
사실은 저곳이 천왕봉인지 아닌지도 조차요…
정상에 돌탑을 쌓아논 것 같고,
그 왼편에 나무로 사각형의 형태를 만들어 놓은 것 같고.,..
움막 오른쪽에 주인인듯한 이가 돌위에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지리산 유람록에 보면 천왕봉 근처에 움막을 짓고 사는 스님들이 있었다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비들이 오면, 자리를 비켜주어 밤새도록 밖에서 덜덜 떨더라는 그런 내용이였는데…
아무튼 1960년대 천왕봉 풍경이라 올려봅니다.
사진출처: Guide To Mt. Chiri national park 라는 제목으로 구례군에서 발간. 연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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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의 서론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국립공원이며,”라고 운운하는 것을 보면 이 책은
<국립공원 지정 순위>
1 | 지리산 | 전북, 전남, 경남 | '67. 12. 29 | 440.485 |
|
2 | 경 주 | 경북 | '68. 12. 31 | 138.160 | |
3 | 계룡산 | 충남 | '68. 12. 31 | 61.148 |
|
4 | 한려해상 | 전남, 경남 | '68. 12. 31 | 510.323 |
|
5 | 설악산 | 강원 | '70. 3. 24 | 373.000 |
계룡산 또는 경주가 선정된 68년 이전에 씌여져야 하지만,
서문을 쓴 유계홍 군수가 이 취임일이 70년 03, 03~73,07,09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면 두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번째, 67년 이전에 발간된 것을 유계홍 군수시절 재판을 찍은 것이가나.
둘째, 진작부터 준비는 해놓았다가 70년 봄 유계홍 군수가 취임하자 발간된 것일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1960년대 지리산 정상의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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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집 "명산 비경에서(향산 김형린 저 1981년 출간)에서 발견한 관련 이야기도 있습니다
김형린 선생은 21년생으로 배재고 교사이며 한국산악회원이었고요.
그는 1961년 7월 지리산 천왕봉 등반을 했고 <천왕봉 정상에서>총 5연으로 이루어진 연작시조 중 3연과 4연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눈 다시 비벼봐도 영락없는 “에스키모”
움집 손수 지어 길손을 기다리다
형제나 찾아온 듯이 반겨하는 산주인
해지자 철바뀌어 겨울이 몰아든다
문닫고 움에 드니 바람이 문열란다
까부는 턱을 달래며 달마중을 나서다
그나저나 1 은 과연 무엇일까요?
설사 천왕봉이 아니라 하더라도(추기:맞습니다) 산위에 설치한 저 나무 격자는 어떤 용도였을까 궁금합니다....~~~
** 지리산 정상석과 지리산 정상의 옛모습을 더 보시려면...->지리99
[출처] 사진으로 본) 1960년대 지리산 천왕봉 풍경|작성자 dar_s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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