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行/지리산 이야기

14세기 지리산과 지금 지리산의 가장 큰 차이...

나 그 네 2017. 10. 2. 15:04

15세기의 산과 20세기의 산을 비교하자면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기후의 변화입니다.

기후 변화는 산의 식생을 바꾸고, 산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합니다.

설악산은 한여름까지 눈이 있어서 설악이다...라는 조선시대 기록이나,

지리산은 8월 한여름에도 크게 얼음이 언다...라는 고기록을 허무맹랑하다고 내칠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오래전에 읽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15세기 지구는 소빙하기였다고 합니다.

기억이 맞다면 그 시절 설악산과 지리산은 그래서 지금과는 달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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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관한 큰 마당인 지리99에는 1964년, 하종락 <두류산동유록(頭流山同遊錄)> 을 최초로 국역해 놓았습니다.

하종락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신라나 고려시대에 살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너무 오래 전이라 살필 수 없다.

조선조 이래로 천왕봉에 올라가 유람한 사람들을 어찌 한정할 수 있겠는가마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남명(南冥) 조식(曺植) 같은 여러 선생들이 모두 유람한 기록을 남겼지만, 괴이하여 말하기 어려운 말은 없었다.  

 

  그런데 청파(靑坡) 이육(李陸:1438~1498) ()<유산기(遊山記)>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절벽과 골짜기 사이의 얼음과 눈은 여름이 지나도 녹지 않는다. 6월에 처음 서리가 내리며, 7월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8월에 크게 얼음이 언다. 겨울 초입에는 눈이 심하게 내려서 골짜기 모두 보통 사람들이 왕래할 수 없기 때문에 산에 사는 사람들은 가을에 산으로 들어가서 이듬해 늦은 봄이 되어서야 내려온다.”

  이상하다! 내가 이번에 지나간 곳과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것이 어찌 이처럼 심한가?

대체로 산이 높으면 하늘과 멀지 않아서 기후가 갑자기 바뀌는 일이 본디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공(李公)이 기록한 것은 무엇에 근거하여 이렇게 분명하게 기록하였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직접 보지는 못하고 여러 중들의 부박(浮薄)하고 허황(虛荒)된 말만 들었기 때문에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공이 어떻게 빙설(氷雪) 사이로 직접 들어가 보고서, 위에서 말한 것처럼 기록할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내가 처음 천왕봉에 올라가 초목을 관찰하고서, 전하는 소문이 대개 거짓말이라는 것을 개탄한 까닭이다.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전해진 김종직과 정여창 그리고 김일손 등의 두류산록을 살펴보면, 이렇게까지는 않다.

​이들에 비해 낯선 인물인 청파 이육은 경솔하고 경박한 사람일까?

김종직 등과 이육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리99에서는 그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륙
세조 조와 성종조의 명신으로 서울의 청파동에서 출생하였다고 호가 청파(靑坡)이다.
젊었을 때 호방하여 무슨 일에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였으며 22세(1459년)에 생원과와 진사과에 오르고 갑신년(1464년)에는 문과에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벼슬은 성균관 직강(直講). 예문관 응교(應敎). 병조참판ㆍ대사헌에 이르렀다. 저술한 책으로는 《청파집(靑坡集》이 있다. 또 인조 때 난을 일으켰던 이괄(李适)은 육의 현손이다

*감상과 이해
이륙이 기묘년(1462.세조8년)에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3년 동안 공부하는 동안 지리산을 두루 산행한 후에 남긴 기록물이다.

그가 오른 등로는 현 중산리-법계사 천왕봉인 듯 하며,
천왕봉과 법계사주변의 지명들과 지리산 동부지역의 수계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어 탐구산행의 좋은 자료가 된다.

​이육이 김종직 등과 다른 것은 자그마치 지리산에서 3년동안이나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지리산에 대해 1회성 등산을 한 이들과는 다른 입장이었고, -다소 과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 그의 의견에 관심을 기울여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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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을 위한 기후의 역사에 관한 책은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오래전에 읽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15세기는 전세계가 소빙하기였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추웠다는 거죠.

18세기에는 슬슬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럽알프스에서는 빙하가 떠내려오는 등 기상이변이 생겼고 작황은 좋지 않았고, 이 때문에 산에는 악마가 산다는 전설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기록물인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여러 이상현상과 기후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15세기 지리산은 지금보다 훨씬 추웠고 따라서,

저는 이 육의 기록이 사실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