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daily/한 국 인

의사 노성훈교수

나 그 네 2009. 1. 9. 12:57

 

의사 노성훈

 

 


 

그는 뜻밖에도 일본의 마루야마, 아까지나 등 이 분야의 세계적 대가들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도쿄 대 전임강사였던 세토는 “한 달 뒤 당신에게 수술을 배울 수 있냐”고 물어왔다. 노 교수는 기분은 좋았지만 “일본인은 역시 칭찬을 잘 한다”며 지나쳤다. 당시 위암 분야는 일본이 독보적이어서 노 교수를 비롯한 한국 의사들이 일본에 연수하러 갈 때였다. 하지만 그해 12월 노 교수가 당황한 일이 벌어졌다. 세토가 ‘정말’ ‘한 수 가르침’을 청하며 찾아왔기 때문. 세토는 현재 도쿄 의대 주임교수다.

일본 학계는 이후 꾸준히 ‘사절단’을 보내고 있으며 2000년대 들어 미국과 중국 등에서도 문하생을 자처한 의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 해 30~40명의 외국인 의사가 제자로 등록하며 이들 가운데에서는 쟁쟁한 ‘중원의 고수(高手)들’도 적지 않다. 노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외국인 의사가 한국인 동료와 함께 나란히 자리에 앉아 스승과 책상을 맞대고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 교수는 아침 6시 반~7시 출근해서 e메일부터 열어보는데, 가르침을 받고 ‘하산’한 제자들이 보내온 안부편지도 적지 않다. 요 며칠 사이에는 이런 편지가 왔다.

“노 교수의 수술 모습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어 너무나 기뻤다.”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 비비안 스트롱)
“수술을 직접 보고 소화기 암의 수술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다. 모든 일본 의사가 교수의 수술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즈오카 암센터 마사야 신보)
“우리들은 귀하의 위대한 수술에 놀랐고 이것을 배울 수 있어 매우 만족한다.” (일본 도쿄의치대 가추유키 고지마)

노 교수는 한 해 600여 명을 수술해 이 부문 세계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 수술 사망률 0.9%, 합병증 15%, 5년 생존율 64.8%라는 유례없는 치료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에는 암세포가 간이나 복만에 전이된 환자에게 항암요법과 수술을 병행하는 방법으로 생존율을 높인 결과를 ‘종양학 연보’에 발표, 호평을 받기도 했다.


 

노 교수는 한동안 ‘3무(三無)의 의사’로 불렸다. 첫째, 수술 전과정을 전기소작기로 진행하기 때문에 메스(수술용 칼)를 쓰지 않는다.  둘째, 환자들은 수술 뒤 콧줄을 달지 않는다. 위암 수술 환자들은 수술 부위의 분비액과 가스가 빠져나가도록 코로 넣어 수술 부위까지 연결되는 콧줄을 달아야 하는데 환자들에게는 고통스럽다. 노 교수는 2002년부터 수술 때 주사로 가스를 간단히 빼내어 콧줄을 달지 않아도 된다. 셋째, 노 교수는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겼을 때 고름을 배출하려고 환자에 배에 넣는 심지도 쓰지 않는다. 노 교수는 환자들에게 무엇이 불편한지를 묻고 또 물어 이러한 수술법을 개발해냈다. “일부 원로교수들은 위암 수술법은 오랜 기간 검증을 거쳐 정착됐기 때문에 20년 전, 10년 전이나 똑같고 지금도 똑같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일 수는 없습니다. 의사의 관점에서는 정착됐다고 할지 몰라도 환자나 보호자의 눈으로 보면 고칠 게 많습니다.”

 

 

노 교수는 수술시간을 기존 4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였고 이 때문에 출혈이 적어 환자의 5%만이 수혈을 받는다. 수술 시간이 짧아 마취제를 덜 쓰게 되고 체액 증발과 신체적 스트레스도 적어 환자의 후유증이 적다. 일본 가고시마대병원 아이코 박사는 노 교수의 환자가 수술 다음날 걸어 다니고 1주일 만에 퇴원하는 것을 보고 “믿을 수 없는 일을 보고 있다. 기적이다”고 경탄하고 초청강연을 거듭 요청했다. 노 교수는 2004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 뉴욕주립대에 연수를 갔을 때 미국의 의료환경을 접하며 “환자에게 더욱 더 진심으로 다가가자”고 다짐했다. 이 다짐의 결과여서일까? 최근에는 3무에다 두 가지를 추가했다. 이제 5무(五無)의 의사라고나 할까.

 

노 교수는 2005년부터 수술 부위를 25㎝에서 15㎝로 줄여 배꼽 밑 수술자국이 없다. 수술 부위가 적으면 장 유착을 비롯한 합병증이 발병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또 지금까지 위장을 수술할 때에는 위장 윗부분의 혈관을 잘라내고 실로 꿰매는 작업을 했는데, 올해부터는 이 부분도 전기소작기로 잘라내 노 교수의 수술에는 실이 없다. 그렇다고 원칙을 파괴하는 ‘혁명가적 의사’는 아니다. 그는 오히려 원칙에 충실하다. 그 원칙은 암 부위를 만지면서 수술해서는 안 된다, 수술은 환자에게 엄청난 신체적 스트레스를 가하므로 가급적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수술 뒤 환자의 삶의 질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세 가지 ‘종양 수술의 원칙’이다.

 


노 교수는 한가한 시간이 없다. 새벽별을 보고 출근해서 분초를 다투는 생활을 하다 오후 10시에 퇴근한다. 그는 매주 3일 동안 새 환자 10여 명을 포함해 90명씩 진료한다. 1주일에 평균 12~13명을 수술한다. 식사도 진료와 수술 시간 틈틈이 간식으로 때우는 습관이 몸에 붙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한 해 20편의 논문을 쓴다. 그는 올해 3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암센터 원장을 맡아 더 바빠졌다. 매주 회의가 줄을 잇고 있으며 심포지엄과 학회 준비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 때문에 애주가인데다 주력도 ‘말술’이지만 마실 시간이 거의 없다. 국제학회에서 가끔씩 동반자들을 KO시킬 따름이다. 요즘은 병원 행정업무나 진료에 지장이 있을까봐 술자리가 있어도 ‘2차’는 가지 않는 원칙을 지킨다.

노 교수는 환자나 제자 모두에게 시원시원하고 친절하게 대해서 ‘서민 의사’로 보이지만, 명문가 집안 출신이다. 선친은 장항제련소 소장을 지냈고 국내 금속산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노명식 박사다. 

 

처가는 유명한 의학자 집안이다. 장인은 혼자서 첫 의학백과사전을 만든 고(故) 이우주 전 연세대 총장이고 처남은 연세대 신경과 이병인, 산부인과 이병석 교수다. 노 교수는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면 풀이 죽는다. 특히 진행성 위암 환자에게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배를 열었다가 퍼진 암세포를 발견하고 다시 닫아야 할 때에는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15~20년 전만 하더라도 수술 환자의 20~30%가 그런 경우였지만 지금은 진단법의 발달로 5~10%로 줄어든 것에 위안을 삼는다. 노 교수는 “위암은 아주 늦게 발견되지만 않았다면 완치가 가능한 암”이라며 “서울대병원 양한광 교수를 비롯해서 수많은 의학자들의 노력으로 한국의 위암 치료성적은 세계 최고에 올랐기에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민간요법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위암은 유전성은 10% 미만이므로 생활습관만 좋게 유지해도 예방에 도움이 된다.

 

1. 담배를 끊어라=담배는 술보다 더 해롭다.
2. 절주하라=폭주가 좋을 리 없다.
3. 규칙적으로 식사하라=하루 세 끼를 규칙적으로 먹어라. 식사는 적게 골고루 먹는다. 소금에 절인 음식을 비롯해서 짠 음식, 불에 탄 음식, 매운 음식은 위암 발병률을 높인다. 특히 짠 음식이 해로우므로 평소 싱겁게 먹는 습관을 들인다.
4. 좋은 음식을 듬뿍 먹어라=야채와 우유는 위 건강에 좋다. 된장과 인삼도 위암 억제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정기적으로 위 검사를 받아라=위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대부분 완치할 수 있다. 40대 이상은 매년 한 번 내시경 검사 또는 위조영술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20~30대도 속이 더부룩하거나 소화가 잘 안되며 가족력이 있으면 검사를 받도록 한다. 위에 출혈이 있다면 반드시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한다.
6. 낙관적으로 지내라=위는 온갖 신경망이 몰려있어 ‘제 2의 뇌’로 불린다. 밝은 생각이 위 건강에도 좋다.
7. 헬리코박터를 없애라=한국인의 60%에게 존재하는 헬리코박터는 일부 위암의 원인이므로 약을 복용해 없애도록 한다.

 

위암의 치료는 종류와 시기마다 다르지만 완치하려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

순 우리말로 밥통인 위(胃)는 음식물을 소화하는 쪽에서부터 바깥쪽으로 점막층, 점막하층, 근육층, 장막하층, 장막층으로 이뤄져 있다. 조기위암은 암이 점막층이나 점막하층에 국한된 것을 가리키고 진행위암은 근육층 이상으로 번진 것을 말한다. 요즘에는 위암의 50%가 조기위암인데 이는 건강검진의 확산 덕분으로 추정된다. 건강검진 덕분에 젊은 환자도 늘고 있다.

 

요즘은 위암의 50%가 조기 위암

위암은 또 암세포가 위벽을 어느 정도 침윤했는지, 암의 전이 여부 등에 따라 1∼4기로 분류하는데 1기는 5년 생존율이 95% 이상이지만 2기는 75~80%, 3기는 40% 정도로 떨어지고 4기는 10%대로 격감한다. 따라서 조기진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위암의 75%는 위의 아래 3분의1 부위에서 발견되는데 최근 위 상부의 암이 증가하는 추세다. 상부 위암은 혹처럼 튀어나오는 암보다 위벽으로 스며드는 암이 많아서 조기발견이 어렵다. 또 림프절에 잘 번져 근치(根治) 절제술이 어렵고 수술 부위가 커지게 된다. 요즘에는 환자의 고령화에 따라 다른 질환을 동반한 위암 환자가 늘고 있다. 이 경우 역시 수술이 더 어려워지는 요인이다. 수술은 암의 발생 및 침범 부위에 따라 위 전체를 절제하기도 하고, 75∼80%를 절제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수술도 위의 절제 부위를 줄이고 남은 위의 기능을 최대한 살리는 등 환자의 ‘삶의 질’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개량되고 있다. 또 아주 초기에 발견됐고 위의 점막층 표면에 있는 크기가 작은 암은 내시경으로도 간단히 제거할 수 있다.

 

위 표면의 작은 암은 내시경으로도 제거 가능

1기암 중에 점막이나 하층에만 암세포가 있다면 복강경으로 수술하기도 한다. 복강경은 배를 자르는 대신 여러 군데 구멍을 내어 장비를 넣고 수술하는 것. 위암에 항암제가 잘 듣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의사가 많다. 그러나 ‘위암도 항암제에 잘 반응하는 암’이라는 것이 최근 의료계의 정설이다. 치료가 힘들 정도로 진행된 위암 환자에게 몇 가지 항암제를 함께 썼을 때 환자의 생명을 의미 있게 연장시키고 또 삶의 질을 뚜렷이 개선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많은 의사들이 수술 뒤 완치율을 높이기 위해 항암제를 보조요법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항암제 치료를 시행한 뒤 수술하기도 하고, 수술 때 암세포를 도려낸 다음 뜨거운 생리수와 항암제를 복강 내에 순환시키기도 한다. 최근에는 항암제 복용과 수술을 병행하는 방법으로 치료율을 높이려고 시도한다. 말기라고 무조건 포기해서도 안 된다. 복막이나 간에만 전이됐다면 수술과 항암요법을 병행해서 치료할 수 있다.

 

 

Q&A 노성훈 교수에게 물어보다

  • 1
    내 인생에 자양분이 된 숨겨진 습관(secret habit)은?
    밤 10시에 공원을 40분~1시간 정도 걸으며 머리를 정리한다. 환자, 가족, 동료와의 문제 등이 생기면 마음을 가라앉힌다. 힘든 일이나 해결해야 할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차분히 선후를 따지는 사고를 하며 해결책을 찾는다.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면 대부분 해결된다.
  • 2
    내게 힘을 주는 경구나 명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성경)
  • 3
    슬럼프에 빠지면 어떻게 극복하는지?
    주위에서는 쉬면서 재충전하라고 권하지만 평소보다 더 일을 많이 한다. 특히 환자가 나빠지면 어쩔 수 없이 힘이 빠지지만 그럴수록 환자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 4
    스무 살 때와 지금 내가 달라진 점은?
    20세 의대생일 때에는 내 중심으로 조급하게 생각했다. 지금은 가족과 동료, 내가 속한 조직인 의대, 암센터, 외과 등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다.
  • 5
    내가 겪은 가장 아픈 실수와 교훈을 들려준다면?
    20년 전 조교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65세 환자였는데 담낭과 담도에 염증이 생겨 응급수술을 했다. 전공의가 혈관을 잘못 묶어 터졌는데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 도저히 터진 혈관을 찾지 못해 거즈로 막아놓고 선배 의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환자는 출혈은 멎었지만 한 달 뒤 후유증으로 장 폐색증이 왔고 재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그 환자는 세상을 떠났다. 외과의사는 단 한 번의 실수가 생명을 가른다는 것을 뼈 속 깊이 절감했다. 수술 중에 한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므로 수술장에서는 모든 지식과 정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진리를 가슴 속에 새기고 있다.
  • 6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외과 선배인 이경식, 민진식 교수다. 두 교수는 성격은 다르지만 훌륭한 인품에 환자를 적극적으로 치료하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교수는 외과교실의 어머니와도 같았다. 영국신사처럼 예의바르고 깔끔하면서도 따뜻했다. 민 교수는 엄부와도 같아 겉으로 차가워 보이지만 속정이 깊은 선배였다. 원칙적이고 위, 아래가 분명한 분이었다. 전임강사가 됐을 때 “내가 17년 뒤 저런 선배들처럼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노력했다. 두 분은 내게 역할모델이었다.
  • 7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진행성 위암을 이긴 조준태 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수술 당시 복막에 암이 전이가 됐다. 전체 림프선 70개 중에 50여 개가 전이가 된 심각한 상태였다. 가족들도 “수술해서 사람만 괴롭히는 것 아니냐”고 망설였지만, “60대 초반이니까 희망이 있다”고 설득해 수술했다. 수술은 잘 됐지만 항암제 치료가 고역이었다. 얼굴색이 새까맣게 변하고 머리카락이 다 빠지자, 조씨와 가족은 항암제 치료를 포기하겠다고까지 말했다. 다행히 1년 간의 항암제 치료기간을 잘 견뎌내고 지금은 7~8년 째 건강하게 살고 있다. 요즘도 1년에 한 두 번은 부인과 함께 “교수님, 이 부근에 왔다가 혹시 계신가 해서 들렀습니다”하고 인사를 옵니다. 이런 환자 덕분에 보람과 감사함을 느낀다.
  • 8
    나의 라이벌은?
    1993년 미국 연수 길에서 돌아올 때는 지금은 고인이 된 서울대병원 김진복 교수를 라이벌로 삼았다. 김 교수를 뛰어넘는 길이 무엇인가 고민했고,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치료만이 그 길이라고 믿었다. 1990년대 말부터는 일본의 사사코 효고대 교수를 라이벌로 삼았다.
  • 9
    의사를 선택한 계기는?
    엔지니어인 아버지가 형제들에게는 당신의 길을 권하면서 내게는 안정적인 길이라며 의사의 길을 추천했다.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일이 근사하게 느껴져 이 길을 선택했다.
  • 10
    외과의사, 이것만은 갖춰야 한다는 자질이 있다면?
    성실하고 꾸준해야 한다. 외과의사는 환자를 24시간 봐야 하고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 5~10년 건강을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나는 술 중에서도 소주 ‘처음처럼’을 좋아한다. 초심을 잃지 않으라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 11
    이 직업 정말 잘 선택했구나 싶었던 때는?
    진행성 위암 환자가 건강한 삶을 되찾을 때다. 수술 뒤 중환자실에 갔던 환자가 회복돼 퇴원하고 나중에 몇 년 째 외래로 찾아오는 것을 맞는 기쁨을 환자나 보호자가 알 수 있을까?
  • 12
    같이 일을 하며 내게 믿음을 주는 사람(선후배/동료)은?
    미국 MD앤더슨암센터에서 연수중인 정재호 교수다. 나를 역할 모델로 여기고 외과에 들어와 위암을 전공하고 있다. 청출어람이 될 듯하다. 보통 임상의사의 연수는 2년이 최장기간인데 MD앤더슨암센터도 강력히 원하고 본인도 더 배울 것이 있다고 해서 병원을 설득해서 1년 더 연수하게 도와줬다. 정 교수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소명의식이 남다르고 속도 깊다. 내년 2월에 귀국하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 13
    다시 스무 살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은?
    그래도 의사가 될 것이다. 외과의사의 길을 갈 것이다. 술은 좀 덜 마셔야겠다.
  • 14
    앞으로 꼭 해내고 싶은 희망이 있다면?
    우선 복막에 전이된 위암 환자를 수술하고 복막에 암이 재발하는 것을 막는 치료법을 개발하고 싶다. 위암 수술 환자의 30%는 수술 뒤 평소 식은땀이 나고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어지럼증, 구역질 등을 호소하는 ‘덤핑 증후군’으로 고생하는데, 이를 해결해서 환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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