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daily/한 국 인

미술가 정연두

나 그 네 2009. 1. 9. 13:01

 

미술가 정연두

 

 

 



정연두의 <지니 시리즈>는 사방이 온통 팍팍한 요즘 들어 더욱 눈에 들어온다.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꿈은커녕 현실에 착근하는 것조차 버거운 젊은 세대. 그들에게 정연두의 ‘꿈 만들어주기 프로젝트’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작품을 사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걸 경계하는 듯했다. 자기 작업은 그저 ‘사람’을 향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출발했을 뿐, 거창한 담론으로 포장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차 한 잔 할까요 라는 말 아시죠. 그건 내가 정말 차를 마시고 싶어서 건네는 말이 아니에요. 상대방에 관심을 보이고, 함께 대화를 나누자는 거죠. 제가 그랬어요. 물론 모르는 사람에게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것으로 그 사람의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건 아니죠. 하지만 저는 제 작업을 통해 알았어요. 다른 사람의 꿈이 궁금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는 걸요.”  정연두가 사진을 통해 만드는 사람들의 꿈은 완전하지 않다. 손님들에게 31가지 아이스크림을 떠주어야 하는 여종업원의 꿈인 남극 여행은 한국의 산과 종이로 만든 이글루를 배경으로 삼는다. 거기에 작가가 빌려온 두 마리의 시베리안 허스키와 함께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작품 속 인물도, 그걸 바라보는 관객도 정연두의 사진을 허구로 보지 않았다. 작가의 빼어난 솜씨는 꿈이라는 판타지를 삶 속에 절묘하게 끼워 넣고 있다.


 

‘꿈’에 관한 정연두의 애착은 <보라매 댄스홀>(2001)이라는 사진 작업에서도 발견된다. 2001년 홍대 앞 대안공간 루프에서 그는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 이미지들을 벽지 문양처럼 전시장 벽에 붙이고, 춤추기 딱 좋은 바닥재를 깔고, 탱고와 차차차를 틀어놓는 작업을 선보였다. “세상은 춤을 춰본 사람과 춰보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죠.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되지 않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긴장감, 눈빛만으로 착착 발을 맞추는 균형감… 보라매 댄스홀을 누비는 어르신들의 스텝에서 ‘낭만’이라는 이름을 발견했어요.”

 

 

 

그랬다. 수십 년 전 입었던 웨딩드레스를 잘라 옷을 만들어 입은 할머니와 머리가 빠지고 배가 불룩 나온 할아버지의 춤추는 모습은 삶의 중심에서 밀려난 보통사람들에게도 여전히 꿈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삶은 아무리 하찮은 것이더라도 아름답고 경건하다는 것을 소리 없이 속삭이고 있었다. <보라매 댄스홀>은 작가가 작업을 위해 춤추는 즐거움을 직접 체험했다는 것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춤추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찍기 위해 춤을 배웠어요. 춤을 모르다 보니 춤추는 장면을 완벽하게 찍을 수 없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제 몸에 춤이 스치자 변화가 일어나더군요. 춤추는 사람들의 스텝이 눈에 들어오고, 몸으로 느끼는가 싶더니 탁탁탁 세 박자에 맞춰 셔터를 누르게 되었어요.”

 

정연두는 2005년 <로케이션> 연작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를 탐색했다. 어디를 보아도 가짜임이 분명한 작품 속의 배경. 그리고 그것이 현실인양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인물. 이들의 간극은 가짜가 진짜처럼 행세하는 우리 시대를 은유 하는 듯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날이 바짝 선 듯한 암벽 사진은 가짜 스티로폼 암벽과 붙어 있다. 가짜 암벽은 최대한 하이라이트를 준 조명을 통해 마치 진짜인 양 위용을 드러내지만 자신을 떠받친 각목들이 살짝 드러나면서 정체가 밝혀진다. 파란 잎에 노랗게 색을 입혀 은행나무로 변신한 소품들 역시 작가의 고의적 의도를 명백하게 해준다. 그런데 이상한 노릇이다.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것, 그러나 너무 진짜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정연두식 판타지 앞에서 사람들은 향수와 추억이라는 한동안 잊고 살아온 ‘마음의 풍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연두는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다. 당시 그의 나이 38세. 흔치 않은 일이었다. 1995년 이 상이 제정된 이래 최연소 작가였다. 아마도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전시보다 규모 있고, 주목 받은 이 전시에서 그는 지난 10여 년을 돌아보는 작업과 자신이 오랫동안 꿈꾸었던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2007)라는 신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로케이션> 시리즈는 야외 풍경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는 실내 세트를 영상으로 담은 게 다릅니다.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는 두 가지 물리적 공간으로 나뉩니다. 관객은 거실처럼 생긴 방에 들어가 소파에 앉아 벽에 걸려 있는 PDP로 영상을 감상합니다. 작품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아요.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 관객들은 영화 촬영 장비와 소품들이 진열된 전시장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 순간, 제가 만든 영상과 설치가 뒤섞인 이 무대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가 흥미로운 까닭은 영상에 꼭 필요한 ‘편집’을 철저히 배제했다는 데 있다. 방 안, 빈 도시의 거리, 농촌 풍경, 들판, 숲, 운해(雲海)라는 6개의 장면이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에서 하나처럼 합쳐진다. 작가가 설정해 놓은 70분이라는 시간 동안 카메라는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그 사이에 오렌지색 옷을 입은 20명의 작업자는 세트를 설치하고, 5명의 연기자는 연기를 펼치고, 이 영상은 전시장의 PDP에 그대로 송출된다. 70분의 시간이 한 컷(cut)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다. 연기자들의 연기 장면은 물론 한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바뀌는 과정, 즉 배경과 소품이 교체되고 철거되는 모든 과정이 카메라 렌즈에 걸려든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모두 놀라기 마련이죠. 꽃무늬 벽지로 장식된 방 안에 사진 액자가 걸리고, 탁자가 등장하고, 카펫이 깔리고, 천정에 샹들리에가 설치되는가 싶더니, 무대 전체가 반 바퀴 회전하면서 아스팔트 도로와 보도블록이 깔리고, 신호등과 버스정류장 표지판이 세워지거든요. 세 번째 장면인 <농촌 풍경>에서는 흙 길이 깔리고 논바닥 모양의 천과 벼 모양의 소품으로 가을 논이 펼쳐지니까요. 심지어 마지막 엔딩도 작업자가 제작진과 출연진의 이름이 적힌 크레딧 라인을 직접 위로 올리는 식이었거든요. 이 모든 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실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영화와 달리 모든 게 가짜라고 당당히 선언하는, 심지어 가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정연두의 영상은 그 어떤 시대보다도 영상에 친숙하다는 오늘날 관객들의 고정관념에 생각거리를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진실과 거짓.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이 모든 것들의 진의를 의심하게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얘기한다. 손맛이 느껴지는 작업이 그립노라고. 국립현대미술관이 이 젊은 작가에게 ‘올해의 작가’라는 타이틀을 선사한 것도 이 작가가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리지 않고 땀 냄새 나는 노동을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가 김훈이 연필로 글을 쓰는 노동에서 아날로그적 삶의 기쁨을 느끼듯이 정연두의 작업에서는 현대미술이 잊고 살아가는 손맛이 살아 숨 쉰다. 2008년 겨울, 서울 사간동 국제갤러리 신관에서는 정연두의 ‘수공예적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이름 하여 <수공기억>전.

 

“<올해의 작가전>을 마치고 제 어머니를 비롯해 10남매를 키운 외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는 요양원을 찾았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좀 두려웠어요. 그런데 놀라운 일을 발견했어요. 어제 무얼 했는지, 지금 자신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는 외할머니가 20년 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정연두는 우연이라는 일상의 체험 속에서 ‘과거에 대한 기억’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찾아냈다. 얼마 후 정연두는 탑골 공원과 노인복지회관 등을 찾아 다니며 40명의 노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언제였냐고. 어르신들은 주저함이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그들의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우리가 걸어왔던 추억의 길이기도 했다. 정연두는 그 중에서 6명의 기억을 시나리오 삼아 7분 50초짜리 영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전시장에 두 개의 모니터를 설치했다.


 

“하나의 모니터에선 공원에서 무심히 하루를 보내는 어르신들의 증언 장면이 나옵니다. 또 다른 모니터는 이들을 웃음 짓게 했던 가장 행복한 기억을 마치 연극 무대처럼 재현한 영상이 보여지죠. 두 개의 모니터를 번갈아 바라보는 관객이 서 있는 미술관에는 주인공의 기억을 복원시켜준 무대와 소품이 놓여 있습니다.” 정연두는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나 홀로 간직한 과거를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행위가 얼마나 숭고한지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행복했던 시간, 저 세상까지 안고 가려 했던 상처와 아픔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치유되는 순간의 기쁨을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수공기억>은 노인들의 얘기를 단순히 재현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과 세트장의 영상, 그 사이에 제가 만든 시나리오가 있거든요. 마치 여러 악기가 하나의 음을 내듯이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공존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수공’이란 손으로 만드는 기억을 말한다. 정연두가 2008년을 마무리하며 수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생산성이라는 획일적인 가치를 강요하는 이 시대를 향한 소리 없는 저항일지 모른다. “학창 시절, 수업이 지루하면 누구나 낙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잖아요. 그런 행동은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으로 보이지요. 하지만 저는 세상이 그런 쓸데 없는 수공예가 갖는 진정성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원에서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얼핏 무의미해 보이죠.

 


공원에서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얼핏 무의미해 보이죠. 하지만 제가 그분들의 말씀을 열심히 듣는 행위를 통해 그분들의 무의미한 기억을 되살리지 않았나요?” 미국 대통령 자리에 오른 버락 오바마는 ‘꿈의 사람’으로 불린다. 세상이 오바마에게 갖다 붙인 수많은 수식어의 대부분은 꿈과 비전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뉴스위크》의 편집장 존 미첨 역시 “정치철학을 초월해서 오바마의 지지자들을 결집한 것은 공유하는 경험이 아니라 공유하는 신념”이라고 썼다. 공유하는 신념.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이를 단어 하나로 정리하면 ‘꿈’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정연두의 작업에서도 사람들의 꿈이 어른거린다. 정연두는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적 행위를 통해 우리가 잊고 살던 꿈을 찾아준다. 유치원 아이, 비정규직 청년, 댄스홀에서 춤추는 사람들, 공원을 서성이는 어르신들…. 그가 찾아 나선 사람들의 꿈은 나이와 국적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정연두의 사진과 영상, 그리고 강한 손맛이 느껴지는 전시장의 세트까지. 정연두 표 ‘종합예술’은 ‘삶의 표정’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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