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국왕이 세 사람을 살해하지 않은 것이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신의 배려였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태후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격이었다. 신뢰하던 아들의 배신, 그리고 천민과 다름없는 생활은 그녀로 하여금 이성을 잃게 만들었다. 태후는 정치적으로는 매우 탁월한 여성이었지만, 포르투갈의 공주 출신이어서인지 가난한 생활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결국 그녀는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렸다. 이사벨은 어린 남동생과 실성한 어머니를 돌보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궁중 생활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 이사벨은 강인한 생활력을 평민들의 삶에서 보고 배웠다. 그래도 자신이 공주라는 사실만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저 머나먼 왕국을 동경하면서 눈만 뜨면 밥 짓고, 빨래하고, 어머니와 동생을 돌보는 생활을 하던 그녀는 천주교 신자가 된다. 그리고 천주교를 통해 ‘너는 할 수 있다’라는 삶의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
태후가 실성을 하자, 정치적인 불안감이 사라진 엔리케는 이사벨과 알폰소를 돌보기 시작했다. 이사벨 공주는 왕국의 큰 재산이기에 관리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엔리케는 살라망카대학의 유명 교수를 아레발로로 보내 이사벨을 공부시켰다. 왕실의 명으로 이사벨의 스승이 된 안나 교수는 공주에게는 화려한 궁중 생활이나 천만금보다도 더 귀한 존재였다. 그녀는 이사벨에게 읽고, 쓰고, 생각하는 교육을 시켰고, 더불어 신앙심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카스티야 왕국은 빈약했지만, 이사벨은 아름답고 강인한 모습으로 환궁한다.
엔리케는 자신의 아버지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귀족들의 횡포로 국고는 바닥을 드러냈고, 백성은 도탄에 빠져 있었지만 젊은 국왕은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게다가 왕비가 낳은 공주의 아버지가 국왕이 아닌 왕후와 친했던 벨트란 데 라 쿠에바 남작이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엔리케는 남성의 기능이 매우 부실한 남자였기 때문에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귀족들은 이 지저분한 왕실을 갈아치우려고 이사벨 공주의 동생 알폰소를 왕으로 추대했고, 내란이 일어났다. 3년간의 긴 전쟁이었다. 난세에 이사벨 공주는 현명하게 사고하고 판단했다. 그녀는 자진해서 왕궁의 볼모로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