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군이 항복한 지 며칠 뒤인 1865년 4월 14일 금요일 저녁 8시가 조금 지난 시각, 링컨 부부는 워싱턴에 있는 포드 극장으로 <우리 미국인 사촌>이라는 연극을 관람하러 마차에 올랐다. 그리고 10시 12분경, 포드 극장 특별석에서 존 윌크스 부스가 대통령의 뒤통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약 9시간 뒤인 4월 15일 아침 7시 22분, 링컨의 사망이 최종 언도되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1908년, 코카서스 산맥 북쪽 어느 마을에서 부족장이 톨스토이에게 부탁했다.
“그는 천둥 같은 목소리로 말했고, 떠오르는 해처럼 웃었으며, 바위처럼 확고하게 행동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링컨이고, 그가 살았던 나라는 미합중국이라고 합니다. 그곳은 너무 멀어서, 젊은이가 걸어서 거기에 닿을 때면 노인이 되어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 사람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1963년 8월23일, 마틴 루터 킹은 이렇게 연설했다. “한 세기 전, 한 위대한 미국인은 노예해방선언문에 서명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의미심장하고 상징적인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 역사적 선언은 불의의 불길에 고통을 받던 수백만 흑인 노예들에게 희망의 등불로 다가왔습니다. 긴 예속의 밤을 끝내는 환희의 새 아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2008년 11월 4일, 미국 제44대 대통령 선거 당선자 버락 오바마는 당선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와 노인, 부유한 이와 가난한 이, 민주당원과 공화당원, 흑인과 백인과 히스패닉과 아시아계와 미국 원주민, 동성연애자와 이성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든 미국인이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미국은 붉은 주(공화당 우세 주)나 푸른 주(민주당 우세 주)의 집합도 아니고 단순한 개인들의 집합체도 아니라는 메시지를 세계에 보냈습니다. 지금은 물론 앞으로 언제까지라도 늘 우리는 미합중국일 것입니다. (중략) 미국이 오늘날보다 훨씬 더 분열되어 있었을 때 링컨이 말했듯이, 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이고 동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