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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1세

나 그 네 2009. 1. 9. 13:07

 

이사벨 1세


한 여인의 눈동자 속에는 눈부시게 푸른 지중해가 담겨 있었고, 부드럽고 풍만한 여인의 가슴으로는 이베리아 반도와 대서양을 품고도 남았다. 그녀의 이름은 15세기 말 스페인을 통일한 여왕 이사벨 1세. 1492년 1월 2일은 스페인 여왕 이사벨 1세가 이슬람 국가 그라나다를 정복해 이베리아 반도에 스페인이 탄생한 날이다.  

 

 

지난 700여 년간 이베리아 반도는 카스티야, 아라곤, 그라나다, 포르투갈 네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역대 그 어떤 왕도 이루지 못한 일을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낸 한 여인이 이룬다. 이사벨 1세는 온 세상을 완벽한 천주교 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그녀가 그라나다를 점령함으로써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은 자취를 감추었다. 비운의 그라나다는 끝까지 저항하다 알람브라 궁전을 보존하기 위해 어느 순간 군대를 거두었다. 이슬람 문명을 사랑하는 왕의 아름다운 결단이었다. 이 결정적인 순간의 선택 덕분에 알람브라 궁전은 스페인에 피어난 이슬람 문명의 꽃으로 종교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지금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든다. 프란시스코 타레가 작곡의 기타 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명인 나르시소 예페스 연주로 듣는다. 이사벨 1세가 이 곡을 들었다면 그녀 역시 즐거워했을까? 아니면, 이교도가 떠오르는 불운한 음악이라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음반을 작살냈을까?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종교 법정을 만들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원한 맺힌 귀신으로 만들었다. 그 원귀들이 이사벨 1세 이후 스페인에 덕지덕지 달라붙어서일까? 역사상 강력한 제국이었음에도 스페인은 르네상스와 근대로 이어지는 동안 더 이상 성장하지 못했다. 그녀를 영웅으로 만들어준 천주교는 그녀를 가둔 또 다른 울타리였는지도 모른다. 장삼이사의 인간처럼 영웅 이사벨 1세에게도 양지와 음지가 있다.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이사벨 1세는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 인물이다. 그녀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동양의 금언을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실현했다. 즉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盡人事), 하늘의 뜻을 기다렸다(待天命). 그녀에게 하늘은 하느님, 즉 천주교 신자로서의 하느님이었다. 그녀는 매우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그 이유는 지중해 물빛처럼 선명했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손을 내밀어준 존재가 바로 하느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손을 잡았고,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메시지를 충실하게 실현했다.

 


이사벨 1세에게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 두 번 있었다. 유년 시절과 결혼이었다. 그녀는 이 두 번의 시련을 절묘하게 기회로 만들었다. 그녀가 여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를 잘 만나 거저 먹은 꿀떡이 아니라, 드넓은 광야를 늑대처럼 헤매다가 스스로 찾아낸 피비린내 나는 전략 전술의 결과였다. 1451년 4월 22일 이베리아 반도 중부에 있는 거대한 왕국 카스티야의 궁전에 한 아이가 탄생했다. 이웃 나라인 포르투갈에서 시집온 이사벨 왕후가 공주를 순산했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아이에게 이사벨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하지만 이 경사스러운 소식은 백성들에게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미 왕국은 부패하고 국왕은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이사벨 공주가 태어나던 당시 카스티야 왕국은 부정부패의 온상인 루나 수상의 손에 썩어가고 있었고, 국왕은 수상의 그늘 아래에서 병들어가고 있었다. 이사벨 왕후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국왕 후안 2세 대신에 사별한 전처의 아들인 엔리케 왕자와 함께 강인한 정치력을 발휘해 이사벨 공주가 두 살 되던 해에 정변을 일으켜 루나 수상을 사형에 처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루나 수상이 죽자 후안 2세 역시 병든 닭처럼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이사벨 왕후는 공주의 동생 알폰소 왕자를 국왕의 품에 안겨 주었지만, 아이가 돌도 되기 전에 국왕은 숨을 거두었다. 워낙 별 볼일 없는 국왕의 죽음인지라 백성도 귀족들도 장례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엔리케 왕자가 왕이 되었다. 국왕이 된 엔리케는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 초심을 잃고 말았다. 그는 이사벨 태후의 탁월함이 마음에 걸렸다. 언젠가 자신을 제거하고 알폰소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줄 거라는 강박증에 시달린 그는 이사벨 공주가 세 살 되던 해에 태후와 두 동생을 왕궁에서 아레발로라는 시골 마을로 유배를 보낸다.

 

 

그나마 국왕이 세 사람을 살해하지 않은 것이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신의 배려였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태후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격이었다. 신뢰하던 아들의 배신, 그리고 천민과 다름없는 생활은 그녀로 하여금 이성을 잃게 만들었다. 태후는 정치적으로는 매우 탁월한 여성이었지만, 포르투갈의 공주 출신이어서인지 가난한 생활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결국 그녀는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렸다. 이사벨은 어린 남동생과 실성한 어머니를 돌보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궁중 생활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 이사벨은 강인한 생활력을 평민들의 삶에서 보고 배웠다. 그래도 자신이 공주라는 사실만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저 머나먼 왕국을 동경하면서 눈만 뜨면 밥 짓고, 빨래하고, 어머니와 동생을 돌보는 생활을 하던 그녀는 천주교 신자가 된다. 그리고 천주교를 통해 ‘너는 할 수 있다’라는 삶의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


태후가 실성을 하자, 정치적인 불안감이 사라진 엔리케는 이사벨과 알폰소를 돌보기 시작했다. 이사벨 공주는 왕국의 큰 재산이기에 관리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엔리케는 살라망카대학의 유명 교수를 아레발로로 보내 이사벨을 공부시켰다. 왕실의 명으로 이사벨의 스승이 된 안나 교수는 공주에게는 화려한 궁중 생활이나 천만금보다도 더 귀한 존재였다. 그녀는 이사벨에게 읽고, 쓰고, 생각하는 교육을 시켰고, 더불어 신앙심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카스티야 왕국은 빈약했지만, 이사벨은 아름답고 강인한 모습으로 환궁한다.

 

엔리케는 자신의 아버지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귀족들의 횡포로 국고는 바닥을 드러냈고, 백성은 도탄에 빠져 있었지만 젊은 국왕은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게다가 왕비가 낳은 공주의 아버지가 국왕이 아닌 왕후와 친했던 벨트란 데 라 쿠에바 남작이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엔리케는 남성의 기능이 매우 부실한 남자였기 때문에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귀족들은 이 지저분한 왕실을 갈아치우려고 이사벨 공주의 동생 알폰소를 왕으로 추대했고, 내란이 일어났다. 3년간의 긴 전쟁이었다. 난세에 이사벨 공주는 현명하게 사고하고 판단했다. 그녀는 자진해서 왕궁의 볼모로 들어갔다.

 

 

자신에게는 왕국을 이끌 힘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알폰소 왕자가 갑작스럽게 죽었다. 이제 이사벨은 열다섯 살의 숙녀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그때 강력한 힘을 길렀다. 동생의 죽음으로 내란의 명분이 사라지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엔리케 국왕이 재위하는 동안 그 누구도 왕위를 뺏을 수 없습니다. 그 자리는 선왕과 하느님이 주신 권리입니다. 한 나라에 두 명의 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엔리케 국왕을 보호할 것입니다.” 현실을 직시한 이사벨의 탁월한 선택에 엔리케는 근심에서 벗어났으며, 왕국은 내란을 멈추었다.
그런 그녀의 운명을 바꾼 것은 바로 아라곤의 왕자 페르난도 2세 와의 만남이다. 엔리케 국왕은 강력한 왕국인 포르투갈과 프랑스 중 한 나라로 이사벨 공주를 시집 보낼 생각이었다. 강대국과 혈연을 맺어 어찌 해보려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이사벨은 천주교 전도사들을 보내 각국의 왕과 왕자들의 정보를 파악했다. 전도사들은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프랑스에 있는 신랑 후보는 유약하고 무능한 자이고, 포르투갈의 국왕은 마흔이 넘은 아저씨이고, 아라곤의 페르난도는 인물도 되고 능력도 있는 멋진 젊은이였다. 그녀는 페르난도를 선택했다. 하지만 국왕은 이사벨에게 포르투갈로 시집가라고 명했다. 그녀는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페르난도에게 편지를 보내 상황을 설명하고 청혼을 해버린 것이다. 이사벨 공주에 대해 훤히 알고 있던 페르난도 왕자는 군대를 끌고 와서 그녀와 결혼을 해버린다. 마치 푸치니 오페라의 스토리 라인 같은 이야기다. 이 만남이 역사를 만들었다. 두 사람은 결국 죽을 때까지 처음 마음 그대로 변치 않는 사랑을 했다.

 

 

그녀는 포르투갈과의 전쟁 등 여러 고난을 헤치고 카스티야 여왕으로 등극하고, 페르난도 역시 아라곤의 국왕이 되면서 두 나라는 합병을 한다. 그들은 대관식에서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국왕의 신성한 의무이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국민에게 봉사할 것을 서약했다. 그리고 열심히 일했다. 나랏일을 돌보기 위해 여왕은 카스티야 각지를 돌았다. 그때 사람들은 “여왕께서 일하시던 방에는 종종 동이 틀 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라고 증언한다. 로마 교황청은 두 나라의 합병을 인정하고 교황 알렉산드르 6세는 부부에게 ‘천주교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내려주었다. 이사벨 1세는 우선 귀족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했다. 그녀가 통치하자 나라는 부유해지고, 백성들은 편안해졌다. 그러자 힘이 모아졌고, 그 에너지로 그라나다 정벌이라는, 선조들이 700여 년간 이루지 못한 한을 푼 것이다. 그라나다 정벌은 그녀가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사명이기도 했다. 1491년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그라나다 정벌을 위해 두 나라의 대군을 이끌고 출정했다. 천주교와 이슬람교의 전쟁이었다. 전쟁의 결과는 반도의 대세인 천주교의 승리로 끝났다.

 

 

여왕은 전쟁터의 병원에서 부상병을 손수 치료했고, 페르난도는 전방에서 부대를 탁월하게 이끌었다. 부창부수의 절묘함이다. 이런 군대는 질 수가 없다. 하지만 이슬람 군대 역시 위대한 전사들의 성전을 치렀다. 강인한 이슬람군의 저항에 페르난도가 최전선에서 탈진하자, 이사벨은 지원군을 이끌고 전방으로 달려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이는 진정 정의로운 전쟁임을 설파했고, 병사들은 다시 하느님을 위한 전쟁터에 온몸을 던졌다. 두 사람은 8개월이 넘는 격전 끝에 마침내 그라나다를 정벌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과업인 레콘키스타를 이사벨 1세가 성공한 것이다. 지도상의 통일을 이루어낸 이사벨은 한발 더 나아가 종교의 통일을 이루고자 했다. 그녀는 이교도들을 가혹하게 박해했다. 심지어 개종한 천주교도까지 몰아서 처형했다. 1489년 종교재판소를 설립, 이 종교 법정은 이후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고, 그 후부터 100년 동안 유럽 전역은 종교 박해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다. 

 

한편 이사벨 1세는 콜럼버스라는 탁월한 탐험가를 후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남편인 페르난도까지도 콜럼버스를 미치광이 사기꾼으로 치부했으나, 그녀는 탁월한 안목으로 콜럼버스를 받아들였고, 그는 6년간 스페인에 머물면서 역시 독실한 신자가 되어 천주교를 세계에 전파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대륙을 발견하기 위한 대항해를 하게 된다. 이 모든 구체적인 계획은 그라나다를 정벌한 지 얼마 안 된 1492년 4월 17일 수립되었다. 그리고 스페인을 세계적인 나라로 만든 신대륙을 발견하고 이후 스페인 식민 제국 시대를 활짝 열었다. 이사벨은 1504년 11월 26일 카스티야가 아닌 스페인 메디나델캄포에서 눈을 감았다.

 

 

<여왕의 시대>(바이하이진 편저, 미래의 창), 동서양 역사상 위대한 여왕 12인을 소개한 책이다. 이사벨 1세를 비롯해서 클레오파트라와 서태후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움직인 여왕들의 이야기가 관련 화보와 함께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남성 주도의 정치 세계 최고 권력으로서의 여성, 위대한 여성, 아니 성을 초월해 위대한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비교적 쉽고 다양하게 읽을 수 있다. <이사벨 여왕>(캐롤린 메이어 저, 문학사상) 이사벨 1세의 공주 시절을 일기체로 쓴 소설이다. 그녀의 불우했던 공주 시절과 페르난도 왕자와 결혼


하기까지의 과정을 소설 형식으로 써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그녀가 어떻게 치열한 왕권 다툼에서 승리하는지 뿌리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한 개인의 내면과 15세기 중·후반 스페인의 정치·사회적 상황도 들여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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