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daily/위대한 인물

아드레날린과 합성물인 클로로포름 화합물

나 그 네 2009. 11. 18. 17:21

치명적 화합물

완전한 진공을 제외하고 모든 곳에 화합물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우리들은 화합물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화합물의 안전성이 항상 우리들의 관심사다. 환경오염과 오염물질의 독성, 천연에서 발견되는 천연물과 인공적 합성물의 독성차이, 중독성과 비중독성, 전쟁과 화학무기, 식품첨가제와 건강 등 화합물을 둘러싼 인류의 관심사는 끝이 없다. 이 글에서는  천연물인 아드레날린과 합성물인 클로로포름의 독성을 사람들이 어떻게 악용했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천연물이라고 안전하다?! 천만의 말씀 - 독성이 있는 천연물 아드레날린

흔히들 천연물은 안전하다고 착각한다. 심심치 않게 독버섯과 복어 알을 먹고 사망했다는 뉴스가 우리 눈길과 귀를 끌지만, 독버섯과 복어 알 속에 들어있는 치명적 독 성분이 천연화합물임을 간과하는 모양이다. 이들 속에 들어있는 독 성분이 무엇인지는 쉽게 인터넷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기에 그 화합물들의 이름과 구조는 독자들에게 숙제로 남겨둔다. 천연화합물 중에는 우리 몸의 부신에서 생산되는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있다. 이 호르몬의 상용명은 에피네프린(epinephrine) 이며 공식 화학명은 매우 복잡해 4-[1-히드록시-2-(메틸아미노)에틸]벤젠-1,2-디올 이며, 분자식은 C9H13NO3 다. 아드레날린의 화학구조식은 아래와 같다.

 

이 화합물은 1895년에 폴란드의 시불스키(Napoleon Cybulski, 1854-1919) 가 처음으로 순수하게 분리했고, 존스홉킨스 대학에 미국의 첫 약학과를 1893년에 설립한 아벨(John Jacob Abel, 1857-1938) 이 그 화학조성을 밝혔다. 처음에는 동물의 부신에서 추출한 아드레날린을 판매 (Hoechst 사 1900년) 하였으나, 1906 년부터 합성 아드레날린이 시판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모두 합성제품이 사용되고 있다. 아드레날린의 다른 이름인 에피네프린은 희랍어 epi 와 nephros 에서, 아드레날린은 라틴어 ad- 와 renes 에서 유래하며, 둘 다 ‘콩팥 위’ (on the kidney) 라는 의미로 부신의 위치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후자를 더 친근하게 느끼기 때문에, 여기서는 에피네프린 대신 아드레날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한다.

 

 

 

우리가 경계하거나 두려운 처지에 놓이면,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심장 박동과 순환하는 혈액의 양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는 아드레날린 때문이다. 아드레날린은 우리 뇌의 신경 자극을 받은 부신에서 생산되며, 혈액으로 들어가 빠르게 수용체를 활성화시킨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해야 하거나, 예상치 않은 나쁜 소식을 들었을 때도 혈류 속의 아드레날린 양이 급속히 증가한다. 아드레날린을 종종 ‘경계, 탈출의 호르몬’ 이라고 부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위험을 경계하고 그에 대응해야 함을 알리는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아드레날린은 심장마비, 과민성 쇼크, 심한 천식, 꽃가루 병 등에 약으로 쓰이고 있으며, 안구 수술 전 안압 저하를 위한 안약으로도 쓰인다. 그러나 아드레날린은 독성이 강해 일 회에 0.2 - 0.5 mg 정도의 소량이 처방된다. 아드레날린은 우리 몸에서 생산되는 천연물이지만, 매우 독성이 커 LD50(50%가 생존 또는 사망하는 양) 가 체중 킬로그램 당 4mg(밀리그램=천분의 일 그램) 이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아드레날린은 생명을 구해주는 유용한 약인 동시에, 심장이 약한 사람이나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 천연물은 무독하거나 무해하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2001년 미국, 간호사가 아드레날린을 주사하여 환자를 살해하였다 

아드레날린의 독성을 악용한 사건이 2001년에 미국을 뒤흔들었다. 사건이 미국사회에 표면화되기는 1995년 7월에 야도고브스키(Stanley Jadogowski) 라는 미국 퇴역군인의 갑작스런 사망에 기인했다. 야도고브스키는 66세로 괴저병으로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 했으며 종종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던 모양이다. 당뇨병과 고혈압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흡연과 심한 음주를 멈추지 못했고 상당히 비만이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장기 요양동에 입원하였다. 고통에 시달리던 야도고브스키를 두 간호사가 힘들여 진정시키고 입원실을 떠날 때, 그들은 길버트(Kristen Gilbert) 간호사가 주사기를 들고 그의 입원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곧이어 ‘이러지 말아요. 제발, 날 죽이려고 이래요!’ 하는 야도고브스키의 외치는 소리가 병실 밖에까지 들렸다. 이 소리를 듣고 이 두 간호사가 입원실로 다시 왔을 때는 길버트 간호사는 보이지 않았고 야도고브스키도 다시 조용해져 있었다. 아무일 없으려니 하고 두 간호사가 다시 병실을 떠난 잠시 후 결국 그는 사망하였다.

 

삼 년 후 그의 시체를 다시 부검해보니 체내 아드레날린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길버트가 아드레날린을 과량으로 주사했으며, 그로 인해 야도고브스키가 사망하였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결국 2001 년에 미국 법정은 길버트가 같은 방법으로 야도고브스키 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 4 명을 더 살해했으며, 아마도 간호사 생활 중 50여명의 환자를 아드레날린 주사로 살해했을 것이라는 끔찍한 범죄사실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아직도 길버트가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분명치 않으며, 단지 하나 아드레날린 주사가 사인으로 쉽게 포착되지 않는 점을 악용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길버트는 사생활에도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고, 귀찮게 구는 환자를 손쉽게 사망시킬 수 있었음에 착안했고, 또 응급상황을 즐겼던 정신적 질환도 일부 지니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우리 인체가 스스로 생산하는 화합물도 넘치면 치명적 독성을 지닐 수 있다는 점이다.

 

 

독성이 있는 화합물 클로로포름, 과거에는 마취약으로도 쓰여…

이제 이야기를 합성물질의 살인적 특성으로 돌려보자.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 클로로포름 (CHCl3) 의 이야기를 해보자. 화학구조적으로 말하면 클로로포름은 천연가스(기체)의 주성분인 메테인 (메탄, CH4) 의 수소원자 3 개를 염소원자로 바꾸어 놓은 꼴이며, 접착제, 농약, 기름, 고무 등의 용제로 널리 쓰인다. 또 클로로포름은 여러 가지 화학제품 제조에도 중요한 원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실온에서는 액체이다. 무색의 이 액체는 물보다 무겁지만 휘발성이 크다. 이 화합물은 마취약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영국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1819~1901)이 1853년과 1857년에 레오폴드(Leopold) 왕자와 베아트리스(Beatrice) 공주를 분만할 때, 왕실 산과의사였던 스노(John Snow, 1813-1858)가 조심스럽게 분만통증을 줄이기 위해 마취량보다 적은 양을 여왕에게 주사한 후 그 사용이 합법화되었다. 그 후 미국에서 1870 년에 마취약을 사용한 40만 건 중, 50 퍼센트가 클로로포름을 사용했고, 40 퍼센트가 에터(디에틸 에테르, C2H5OC2 H5) 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직도 클로로포름이 가진 마취기능의 정확한 메커니즘을 알지 못하지만, 최근의 발표에 의하면 주로 뇌의 칼슘이온 이동경로를 차단하는 모양이다.

 

클로로포름을 마취약으로 사용하게 된 역사적 배경에는 웃지 못할 얘기가 숨어있다. 영국 에딘버러 대학의 산과의사였던 심슨 (James Simpson, 1811-1870) 은 1847년에 산고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여러 가지 휘발성 액체를 마취약으로 실험해, 에터, 질산에틸, 벤젠, 이황화탄소 등의 마취성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모두 냄새가 나빠 사용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던 중 영국 리버풀에 있는 약사 왈디(David Waldie)에게서 클로로포름을 사용해 보라는 권고를 받았다. 냄새도 훨씬 덜 역겹고 마취 효과도 우수하리라는 얘기였다. 같은 해 11월에 심슨은 가족과 친구들을 저녁에 초대해 클로로포름 기체를 코로 들이마시게 하였다. 자기 자신은 물론 참석자 대부분이 밥상 밑에서 깊이 잠에 빠져버렸다. 이 사실을 유명한 의학 학술지인 랜싯(Lancet)에 즉시 발표해 클로로포름의 마취효과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마취제들의 독성이나 중독성에 관해서는 별로 염려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난 2005년, 영국에서는 마취제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살인 사건도 있었다

지난 2005년에 있었던 일이니 아직도 영국사회에서는 이 사건을 잊지 않고 있으리라 믿는다. 개빈 홀(Gavin Hall) 과 조안나 홀(Joanne Hall)은 각기 다른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딸 둘을 두고 있는 결혼 6년차 부부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결혼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부인이 웹사이트에서 만난 변호사와 불륜의 관계를 갖게 되었고, 두 딸을 데리고 개빈과 헤어지겠다고 결심한 모양이었다. 그러던 중 개빈이 큰 딸을 지하실로 유인해 항울약을 먹여 졸립게 만든 후 클로로포름으로 적신 천으로 얼굴을 덮어 사망케 하였다. 전날 클로로포름으로 살해한 고양이 두 마리를 큰딸 옆에 두고. 자기 어머니, 부인 및 부인 애인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자기도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로 그쳐 2006 년에 최소 16년 옥살이를 해야 하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이 전에도 19세기 후반에 영국사회를 뒤흔든 살인사건에 클로로포름을 사용한 예가 있으며, 자살에 클로로포름을 사용한 예도 있다. 사체 속에 남아있는 미량 화합물의 분석에는 흔히 액체나 기체 크로마토그래피 분석법과 질량분석법이 사용된다.


 

사실 1970년대 까지도 감기약 등에 클로로포름이 사용되었으나, 1976년에 미국의 FDA는 클로로포름을 화장품, 약, 식품포장재 등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소량의 클로로포름은 단맛을 준다. 파상풍 같은 비자발적 반사병 환자와 스트리키닌 같은 신경흥분제 중독, 발작적 기침, 공수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클로로포름 제제들이 19세기부터 사용되어 왔으며, 여성들 중에는 클로로포름 흡입이 색정적 환상에 젖게 한다는 보고도 있었다.

 

그러나 클로로포름은 두 가지 점에서 그 독성을 엿볼 수 있다. 첫 번째로, 과량복용이나 주사는 심장을 즉시 멈춰 죽음에 이르게 하며, 장기간 복용이나 노출은 간, 폐, 신장에 해를 준다. 클로로포름 자체보다 클로로포름 대사물질(주로 간에서 생성)이 이런 독성을 보여준다고 알려져 있다. 두 번째로, 동물실험에 의하면 신장과 간에 암을 유발하는 듯하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는 충분치 않아 아직도 논란 중이다. 따라서 미국 환경보호국(EPA)도 아직 특별히 노출한도를 지정하지 않고 있으나, 음용수에 클로로포름 함량이 0.3ppm (1ppm = 백만분의 일) 이하이면 별 문제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흔히 수돗물을 소독할 때 염소를 사용하는데 물 속에 존재하는 병균과 유기불순물이 염소와 반응해 클로로포름을 만들기 때문에 클로로포름의 독성은 계속 주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떤 화합물의 유익성과 유해성을 우리는 항상 들으면서 살고 있다. 유해성이 지나치게 강조되어도 옳지 않으며, 그렇다고 유익성만 주장해도 옳지 못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화합물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며, 우리 주위에 화합물로 되어있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과학적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화합물, 화학물질, 화학첨가제 등을 논할 때 그들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우선해야 한다. ‘이 오렌지 주스에는 화합물을 전혀 첨가하지 않았습니다’ 라는 광고를 볼 때, ‘그러면 저 주스는 진공이구먼’ 하면서 냉소를 금할 수 없어 피식 웃곤 한다. ‘물 조차도 화합물인데….’

 

 

 

진정일
진정일 / 고려대 화학과 석좌교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시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화학과 석좌교수이며, 국제순수-응용화학연맹(IUPAC)과 한국과학문화진흥회 회장이다. 저서로 <교실 밖 화학이야기>등이 있다. 한국과학상, 수당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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