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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매니저]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가네

나 그 네 2010. 9. 4. 09:05

 


[JES]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

최근 낙마한 한 공직 후보자가 인용해서 화제가 된 말이다. 원래는 마오쩌둥 어록에 있는 말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사람이 막을 수 없고 홀어머니가 재가하는 것을 어린 자식이 막을 수 없듯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을 뜻하는 표현이다. 그가 청문회 기간 동안 남긴 어록 중 유일하게 그럴듯한 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SK 김정준 전력분석 코치가 말했다. “야구에서 상대가 잘하는 건 막을 수 없다”고. 내리는 비를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상대가 우리보다 강한 건, 저쪽이 우리보다 잘 치고 잘 던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그걸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야구란 그런 시합이다.”

이를테면? 상대 선발이 하필이면 류현진인 날이 있다. 이런 날은 타자들에게는 그냥 비가 아니라 폭우가 내린다. 낼 수 있는 점수는 2점, 많아야 3점. 대량득점을 하겠다고 덤비다간, 홈런을 쳐보겠다고 까불다가는 혼쭐이 난다. 반대로 처음부터 지레 포기하면 결과는 무기력한 완패가 될 게 뻔하다. 어떻게 할까.

다른 상황. 저기 대기 타석에 이대호가 있다. 그 뒤로는 홍성흔, 가르시아, 강민호가 줄줄이 롯데햄처럼 이어진다. 그야말로 투수에게는 천둥 번개가 치는 순간이다. 과연 홈런을 안 맞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안타나 볼넷 하나 안 내주고 전부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게 가능할까. 김 코치는 “그런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비가 오면 배수 시설을 만들고 방수포를 깔아 비가 운동장에 최대한 덜 스며들게 하듯이, “상대방을 최대한 어렵게 만드는” 것이란다. 잘하는 상대를 최대한 껄끄럽게, 불편하게,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기 힘들게 몰아가는 것. 김정준 코치는 “상대가 안타를 아예 못 치게 할 생각으로 경기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안타 아예 안 맞고 홈런 안 맞고 하는 건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맞더라도 최대한 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자는 거다. 상대에게 편한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는 것, 상대의 생각대로 쉽게 끌려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설사 홈런이나 안타를 맞더라도 최소한 상대가 '이기지는 못하게' 하자는 게 우리의 전략이다.”

9월 2일, 류현진을 상대한 삼성이 바로 그랬다. 이날 류현진의 투구내용은 5이닝 5안타 2실점.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두 점 이상 내주지 않는다는 철칙에는 변함이 없었다. 삼성도 애초부터 5점 6점을 낼 생각으로 나선 시합은 아니었다.

하지만 삼성은 대신 류현진을 최대한 어렵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2회부터 5회까지 매회 선두타자가 출루하며 한화 배터리를 괴롭혔고, 타자들은 초구 스트라이크 뒤에도 볼카운트를 최대한 길게 끌고 가며 류현진의 투구수를 늘렸다. 찬스 때마다 어김없이 나온 팀배팅과 희생타로 주자를 득점권에 보낸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

결국 5회까지 투구수 99개를 기록한 류현진은 1-2로 뒤진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가야 했다. 물론 류현진을 상대로 삼성이 따낸 점수는 단 두 점. 류현진에게 따낼 수 있는 예상점수의 최대치다. 하지만 상대를 '힘들게' 만든 차이는 컸다. 삼성은 류현진에 이어 나온 투수들을 신나게 두들기며 결국 8-2 대승을 거뒀다.

같은 날 롯데전에 나선 KIA 양현종은 그 반대였다. 이날은 팀의 4강 싸움과 개인 15승이 걸린 시합으로, 양현종에게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경기. 하지만 천적인 이대호(상대 타율 .417 2홈런 12타점)가 있기에 심리적인 부담이 매우 큰 시합이기도 했다.

초반은 좋았다. 1회초 삼자범퇴에 이어 2회초 선두로 나온 이대호에 공 4개만에 플라이 아웃을 잡아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사단이 났다. 이대호를 잡고 다음 타자 강민호에게 0-1에서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간 공이 선제 솔로 홈런으로 이어진 것. 뒤이은 가르시아를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한숨 돌리나 싶더니, 곧바로 7, 8번 타자에게 연속 2루타를 허용하며 점수는 어느새 2-0이 되고 말았다.

이날 양현종의 최종 성적은 3.1이닝 7안타 5실점. 천적 이대호를 상대로는 두 번 모두 범타로 잡아냈지만, 그 다음 타자들에게 속절없이 당했다. 경기를 지켜본 한 관계자는 “너무 잘 던지려고 한 게 화근이 된 것 같다”며 “롯데 송승준이 워낙 완벽한 투구를 보인 것도 양현종이 과욕을 부리는데 일조했다”고 평했다.

한편으로는 “공격적인 롯데 타자들 상대로 같이 공격적으로 나선 것도 아쉬웠던” 대목. 이날 이대호를 비롯해 롯데 상위타선을 비교적 손쉽게 막아낸 게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어려운 타자(이대호, 가르시아, 강민호)를 잡아낸 뒤 곧바로 하위타자들에게 큰 것을 허용한 게 그 증거다.

태풍이 휩쓸고 간 이날, 대전과 광주에 쏟아진 것은 류현진과 이대호라는 이름의 폭우였다. 삼성은 이 비를 막으려 드는 대신에, 배수로를 만들고 방수포를 펼치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류현진에게 언제나처럼 2점밖에 못 내고서도 승리했다. 반면 양현종은 이대호에게는 이겼지만, 시합에는 졌다. 시집가는 어머니를 스물 두 살 어린 아들이 말리려고 든 게 실수였다. 야구란 그런 경기다.

김정준 코치는 “강팀과 약팀, 잘하는 선수와 경험이 부족한 선수의 차이는 상대보다 얼마나 잘 하느냐가 아니”라고 했다. 관건은 “얼마나 상대를 어렵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내리는 비를 사람의 힘으로 막으려 하지 않는 것,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 인생에서나 야구에서나 마찬가지로 통용되는 원리다. 야구에 세상만사가 모두 담겨 있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그래서가 아닐까.

글 : <야구라> 배지헌 (www.yagoor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