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의 올 시즌 최고 성적은 스프링캠프에서 누구 보다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거치면서 나올 수 있었다. 이대호가 지난 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경기에 앞서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을 하고 있다. 부산 = 곽성호기자 tray92@munhwa.com |
‘빅보이’ 이대호(28·롯데)가 자신의 생애뿐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의 새로운 타격기록을 써가고 있다. 지난 8월14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2010 프로야구 정규리그 KIA와 원정경기에서 9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 ‘세계기록’을 갈아치운 이대호는 국내 최초로 시즌 타격 7관왕에도 도전하고 있다.
이대호는 7일 현재 도루를 제외한 타격 7개 부문 모두에서 1위에 올라 있다. 타율(0.363)과 홈런(42개), 타점(125개), 득점(96개), 최다안타(165개), 장타율(0.666), 출루율(0.443)에서 대부분 2위와 큰 차를 두고 있어 7관왕 달성은 아주 어려워 보이진 않는다.
어린 시절 부모 없이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 이대호는 프로에 입단하며 투수에서 타자로 변신하는 어려움을 겪었고 이후에 찾아온 부상을 극복하고 오늘날 한국 최고의 타자로 우뚝 서 있다. 정규리그 잔여경기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팀의 4강 진출을 위해 온 신경을 쏟고 있던 이대호를 지난 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만났다.
먼저 자신을 키워준 가장 기억에 남는 스승에 대해 물었더니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나왔다.
“여러 스승이 계시지만 경남고 시절에 전광렬 코치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를 강하게 키워주신 스승이세요.”
경남고가 ‘KBS초청 고교야구최강전’ 결승(11일)에 올라 있어 정신이 없는 전 코치와 7일 통화를 했다. “대호가 그렇게 말해요?”하며 전 코치 자신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대호가 부모가 없다고 특별히 배려한 건 없어요. 이런 생각은 했어요. 대호는 야구해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놈이다, 어설프게 도와줘선 더 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숙소생활을 같이하면서 오히려 더 매몰차게 대한 것 같아요. 대호가 제 실력으로 잘한 거지요.”
전 코치에 따르면, 고교 때 이대호는 성격이 밝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좋은 가정환경의 선수로 알았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키는 컸지만 호리호리한 편이었다. 투·타와 수비에 고루 능했다. 3학년 때 투수로 본격적으로 나서 첫 대회에서 당시 최고투수였던 덕수상고의 류재국(메이저리그 진출)과 맞대결을 벌여 0-1로 패하긴 했지만 호투했다.
이대호는 아버지가 세 살 때 돌아가시고 재가한 어머니와도 헤어져 할머니와 살았다. 이대호가 야구를 시작한 것은 부산 수영초등학교 4학년 때. 알려진 대로 야구를 위해 전학 온 추신수(28·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꼬셔서’ 야구를 시작했다. 둘은 초등학교 이후 다른 학교를 다녔지만 2000년 캐나다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국가대표로 만나 우승을 일군다.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함께 뛰게 됐다.
할머니는 이대호가 경남고 2학년 때 돌아가셨다. 이대호의 목소리가 차분해진다.
“손자를 키우기 위해 평생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어요. 정말 정이 많으신 분이었는데…. 꼭 성공해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해 열심히 운동을 했어요.”
이대호는 비시즌이 되면 홀로 사는 노인들을 위해 연탄을 배달하거나 양로원을 방문한다. “주위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노인들을 보면 고생하시다 일찍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난다”고 이대호는 말한다.
야구 이외에 인생의 목표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대호는 주저 없이 “아주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부모 없이 자란 성장기가 이 같은 목표를 갖게 한 것 같다. 이대호는 지난해 12월26일 동갑내기 신부 신혜정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슈퍼스타의 결혼으로 관심을 모았는데, 신부는 유치원교사 출신의 평범한 여성이어서 더욱 화제가 됐다. 2001년 12월 ‘고 임수혁돕기 일일호프’ 행사에서 처음 만나 무려 10년 가까이 연애를 했다. 짓궂은 질문을 해보았다.
―보통 선배·동료 스타급 선수들은 아나운서 등 유명인들과 결혼을 하는데…, 그걸 보면서 자신은 연애에서 결혼으로 이어지는 동안 갈등이나 유혹은 없었나.
“유혹을 받기 전에 먼저 차단을 했지요.(웃음) 원정경기를 가서 떨어져 있으면 아내와 틈날 때마다 문자메시지를 해요. 오래 연애했지만 지금도 연애하는 기분이에요.”
―자녀가 야구를 한다면 시키겠나.
“절대 안 시켜요.”
딱 부러지게 안 시킨단다. 그만큼 이대호 자신도 운동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사실 이대호가 올해 만든 아홉 경기 연속 홈런은 대단한 기록이다. 어느 정도 어려울까? 한 수학을 잘하는 야구팬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확률계산에 따르면 약 0.00006, 즉 10만분의 6에 해당하는 확률이라고 한다. 현역시절 강타자였던 김용희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은 “홈런을 치라고 투수가 공을 던져줘도 실제 홈런을 때리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예컨대 올스타전에서 항상 벌이는 ‘홈런더비’를 보면 알 수 있다. 말 그대로 홈런을 치라고 공을 던져주지만 그게 쉽지 않다. 이 위원은 “더욱이 경기마다 투수와 까다로운 승부를 하며 연속해서 홈런을 치기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인다. 130년 역사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8경기 연속 홈런 기록이 최다로 단 3차례밖에 나오지 않았다. 1936년부터 막을 올린 일본 프로야구는 두 차례 7경기 기록만 갖고 있다.
―기록을 세울 당시엔 사실 자신과의 승부였을 것 같은데…. 기록을 의식했나.
“기록을 세워야 하겠다는 욕심을 내서는 결과가 좋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록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말수도 줄이고 침묵을 했었죠.”
이대호는 올 시즌 홈런뿐 아니라 타율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다. 보통 홈런타자가 타율이 다소 낮은 것과 다르다.
―국내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투수는.
“대현이 형이에요. 그 형 볼이 가장 치기가 어려워요. 그 형만 없으면 진즉에 50홈런, 4할을 했다고 생각할 만큼이요.”
대현이 형이란 SK 정대현(32) 투수를 말한다. 이대호는 정대현에게 41타수 2안타로 철저히 당하고 있다. 오히려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안게임 등을 거치며 미국, 쿠바, 일본 등 세계 야구의 특급투수들과 대결해봤지만 상대하기 어려웠던 투수는 기억에 없다고 했다.
―타격기술에 있어서 스스로 보완할 점은 뭐라고 보는가.
“참을성을 더 길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한테 타격이 좋아진 이유를 묻는데, 솔직히 전지훈련 때 열심히 한 것 이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면 편하게 볼을 기다리게 됐다는 거예요.”
타격 7관왕을 바라보는 이대호는 어떤 타격기록에 가장 애착을 가질까.
“타자들이 누구나 그렇지만 물론 타점이지요. 데뷔 초기에 덩치만 컸지 공을 못 맞힌다는 말도 들었고, 시즌 초에는 잘하다 중반 이후 약점이 드러나며 부진에 빠진다는 말도 들었죠. 어릴 때는 멋모르고 그냥 막 하기도 했고요. 역시 타점을 생산해 팀 승리에 기여하는 만큼 타자에게 좋은 건 없어요. 올 시즌 개인적으로 달성하고 싶은 욕심이 뭐냐고 묻는데, 당연히 팀의 우승에 기여하는 거죠.”
이대호는 류현진(23·한화)과 올 시즌 최우수선수(MVP)를 걸고 경쟁하고 있다. 류현진과는 2006년에도 경쟁을 했는데 당시에는 류현진이 MVP가 됐다.
“경쟁이요? 크게 신경 안 써요. 현진이가 잘하니까 형으로서 기분이 좋다고 할까?, 그래요.”
이대호는 내년 시즌이 지나면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리게 된다. 스타급 선수면 누구나 갈망하는 미국이나 일본 프로야구로의 진출이 가능해진다. 큰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다. 메이저리그를 잘 아는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은 “메이저리그 감독들도 3년 전부터 이대호에 대한 정보를 나에게 캐묻고 있다”고 말했었다.
“해외진출에 대해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미국이냐, 일본이냐도 생각 안 해봤고요. 로이스터 감독은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제가 주루 플레이를 보완해야 한다고 했는데, 당연한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대호의 공식체중은 100㎏. 하지만 실제는 130㎏ 정도로 알려져있다. 이대호는 몸무게와 관련해 아픈 기억이 있다. 2002년 중반에 부임한 백인천 감독이 이대호에게 공개적으로 체중 감량을 명했고 사직구장 스탠드를 오리걸음으로 오르내리는 감량훈련을 하다 왼쪽 무릎 반월판 연골이 파열돼 시즌 뒤에 수술을 받았다. 사실 타자의 몸무게는 종종 논란이 되곤 하는데 야구는 다른 운동과는 차이가 있다. 예컨대 로이스터 감독은 “체중을 줄이는 것보다는 몸의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대호는 유연성과 밸런스는 뛰어나다.
“백 감독님이 당시에는 한없이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요. 시즌이 끝나면 뺄 수 있을 때까지 몸무게를 줄여볼 생각이에요.”
이대호는 7일 사직구장에서 순금 300돈으로 제작된 길이 30㎝. 무게는 1125g의 황금 배트를 구단으로부터 받았다. 9경기 연속 홈런의 세계신기록에 대한 구단의 보답이다. 이대호는 “부산 팬들과 구단에 보답하기 위해 올 시즌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위해 몸을 던질 각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 엄주엽 체육부 부장대우 (부산)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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