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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타자

나 그 네 2011. 6. 23. 17:46

 

지명타자

2005년, 악몽 같은 텍사스 생활을 끝내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유니폼을 입게 된 박찬호가 구단 홈페이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오랜만에 내셔널리그로 돌아온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셔널리그가 더 재미있다. 여기서는 투수도 타격을 하고 번트를 댄다. 그게 진정한 야구다. 훨씬 더 재미있다.”

 

박찬호의 말을 단순히 그가 야구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시간을 보낸 곳에서 간신히 탈출한데 따르는 환희의 표현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만일 그런 의도였다면 그가 ‘진정한 야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박찬호의 발언은 아메리칸리그의 특징인 지명타자(DH, designated hitter) 제도에 대한 야구 순수주의자들의 거부감을 나타낸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의도야 어찌됐든 그가 말한 ‘진정한 야구’나 ‘재미’와 같은 표현들은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야구 보수주의자들이 지명타자 제도를 배격하고 내셔널리그의 순수성을 찬양할 때 내세우는 대표적인 가치가 아닌가? 지명타자는 완전 억지이고 야구라는 신성한 게임에 장난을 치는 행위이며, 그런 제도를 도입했다가는 야구의 본질적 재미(뛰어난 투수들의 대결과 환상적인 수비, 다채로운 작전, 경기 막판 투수 교체와 대타 기용을 둘러싼 머리싸움 같은 것들)가 돌이킬 수 없게 훼손될 것이라는 게 도입 당시 반대 진영의 논리였다.

 

반대로 찬성론자들은 지명타자가 공격력의 활성화를 통해 야구를 더 흥미롭게 만들 것이라고 응수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조지 벡시에 따르면 지명타자를 둘러싼 논쟁은 “그만큼 공공연하고 격렬하게 의견이 양분된 적도 없었고 아직까지도 그 상처가 곪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올해로 벌써 39년이 지난 일인데도.

 


지명타자의 탄생

“가서 치고, 와서 앉아.”

 

1973년, 야구 역사상 최초의 지명타자인 양키스의 론 블롬버그의 시즌 첫 타석을 앞두고 코치가 건넨 조언이다. 그 이전까지 주로 1루와 우익수로 활약한 이 젊은 선수는, 수비는 하지 않고 타자로만 나가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보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코치의 조언을 들은 블롬버그는 첫 타석을 밀어내기 볼넷으로 장식했고(공교롭게도 그는 공을 치지도, 와서 앉지도 못했다), 다음 타석에서는 2루수쪽 내야안타를 쳤다. 이날 블롬버그의 성적은 4타석 3타수 1안타 1타점. 시즌 성적은 타율 3할2푼9리에 12홈런과 장타율 .498로 데뷔 이래 최고 기록이었다.

 

물론 우연히 역사적인 자리에 있게 된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블롬버그는 전형적인 지명타자와는 거리가 먼 선수였다. 사실 지명타자는 스물넷 유망주인 그가 있을 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지명타자 제도의 원년인 1973년, 이 포지션으로 1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는 8명이었다. 프랭크 로빈슨(Frank Robinson), 올랜도 세페다(Orlando Cepeda), 토미 데이비스(Tommy Davis), 알렉스 존슨(Alex Johnson), 토니 올리바(Tony Oliva), 게이츠 브라운(Gates Brown), 데론 존슨(Deron Johnson), 짐 레이 하트(Jim Ray Hart). 이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는 한때 매우 뛰어난 타자였지만 선수 생활 막바지에 접어든 ‘노장’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들 모두 수비수로서 가치가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는 점이다. 처음 시행하는 제도였지만 구단들은 본능적으로 지명타자를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가장 유리할지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도입될 당시만 해도 지명타자는 궁여지책에 지나지 않았다. 아메리칸리그는 내셔널리그에 비해 떨어지는 인기와 극도의 투고타저로 오랜 기간 전전긍긍했고, 리그 활성화를 위해 그야말로 뭐라도 해야 하는 처지였다. 조급한 아메리칸리그와 달리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처지의 내셔널리그는 인터리그, 지명타자 등을 도입하자는 경쟁자 진영의 제안에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그들로서는 한창 장사가 잘 되는 상황에 굳이 변화를 시도하거나 건너편 리그를 도울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야구의 순수성’을 이유로 들어 지명타자에 반대한 내셔널리그의 주장이 과연 진심이었을지는 의심스럽다. 그들은 단지 경쟁 관계의 리그가 자신들을 따라잡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한다는 게 마뜩잖았을 뿐이고, 반대할 만한 논리를 찾다 보니 ‘야구에 장난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을 채택한 것일 수도 있다. 원래 큰 점수 차로 앞선 팀과 추격하는 팀의 전술은 전혀 다르게 마련이다.

 

감독의 투수교체와 대타기용은 야구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지명타자 도입 당시 반대론자들은 경기 후반 투수교체에서 오는 묘미를 없앰으로 야구를 재미없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명타자가 로테이션 형태로 기용되면서, 투수교체 못지않게 복잡한 결정사항이 되는 추세다. <사진: 케이채 kaychae.com>

 

 

아무튼 지명타자 제도는 이단 취급과 온갖 반대 속에서도 빠른 속도로 리그에 자리를 잡아 나갔다. 결과도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이었다. 새로운 볼거리의 등장은 아메리칸리그뿐만 아니라 리그 전체의 관중 수 증가로 이어졌고, 투고타저 역시 시행 1년 만에 아메리칸리그 평균 타율이 2푼 가까이 상승하면서 상당 부분 해소됐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리그에서도 1975년 지명타자 제도를 시행하며, 미국에서 시작된 야구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아메리칸리그가 퍼시픽리그로, 내셔널리그가 센트럴리그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동일한 내용과 양상의 논쟁이 일본 야구계에서 펼쳐진 것이다.

 

 

지명타자 불가론

지명타자 제도에 반대하는 센트럴리그의 생각은 꽤 완고했다. 당시 센트럴리그 사무국은 ‘지명타자 불가론’으로 무려 9가지나 되는 이유를 제시했는데, 그 내용을 지명타자 시행 이후 나타난 결과와 비교해 보면 여러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띈다. 다음은 센트럴리그가 내세운 지명타자 불가론의 9개 조항이다.

 

첫째, 지명타자는 한 세기 반이나 흐른 야구의 전통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1930년대 활약한 베이브 루스(Babe Ruth)의 경우 그 육중한 몸으로 선수 생활 마지막 시즌까지 외야에서 뛰어다녀야 했다. 아마 그가 현대의 야구장에 와서 블라디미르 게레로(Vladimir Guerrero)나 짐 토미(James Howard Thome) 처럼 덕아웃에 앉아 있다 가끔 나와서 타격만 하고 들어가는 선수들을 보면 불같이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야구가 근본적으로 뒤집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밤비노의 시대나 오늘날이나 투수는 공을 던지고 타자는 친다. 야구의 기본적인 경기 방식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기껏해야 선수들이 씹는 담배의 종류가 늘어나고 포수가 하키 마스크를 쓰게 된 정도가 전부다. 그 외의 기술적인 변화는 야구의 진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발달이라고 봐야 한다.

 

둘째, 투수를 대신해 대타를 내거나 어떤 대타를 낼까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야구 전술의 중심인데 지명타자는 이런 재미를 없앤다. 지명타자 도입이 감독이 내려야 하는 결정의 수를 약간 줄어들게 한 것은 사실이다. 아마 양키스나 보스턴의 감독이라면 7회까지 잘 던지고 있는 투수를 득점 찬스에서 대타로 교체하는 문제를 두고 고뇌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투수 자리에 대타를 내는 결정이 야구 전술의 중심이라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특히 미국보다 작전 구사가 훨씬 많은 일본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또한 1번부터 9번까지의 라인업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는 일도 대타 작전만큼이나 감독의 흰머리를 늘어나게 하기에 충분하다. 야구는 원래 한 가지 고민이 해결되면 다른 쪽에서 고민이 생기는 종목이다.

 

셋째, 투수도 타격에 참가한다는 기본적인 사고를 희박하게 한다. 지명타자를 사용하는 리그에서는 어쩌다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게 되면 굉장한 화제가 되곤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주장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과 일본 리그의 절반에서는 투수도 타격에 참가하고 있으며, 이는 아마추어 야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메리칸리그 투수들도 일단 내셔널리그로 옮기면 타자로 나서야 하며, 이는 투수가 공격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여전히 상기하게 한다.

 

넷째, 지명타자 제도의 규정이 까다로워 팬의 혼란을 야기한다. 제도가 정착된 오늘날, 잘 훈련된 야구 팬은 지명타자 제도 정도를 갖고 혼란스러워 하지는 않는다. 사실 야구 규칙은 원래가 까다롭고 복잡한 것이다. 그리고 지명타자 규정이 까다로운 만큼 지명타자가 없는 내셔널리그에서 종종 벌어지는 더블스위치 같은 상황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다.

 

다섯째, 베이브 루스나 스탠 뮤지얼 같은 대선수들도 다 투수에서 시작해 야수로 전향했다. 프로에서는 투타 전환이 과거처럼 자주 일어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마추어 단계에서는 여전히 많은 선수가 투타를 겸하고 있으며, 프로에서도 마이너리그에서는 포지션을 바꾸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지적은 내셔널리그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가능하다. 과거 투수로 이름을 날리다 프로에서 야수로 전향한 선수들은 왜 경기 도중 팀이 필요로 할 때 마운드에 올라와서 던지지 않는가? 어째서 야수가 투수로 등판한 날에는 스포츠 뉴스의 ‘진기명기’ 코너를 어김없이 장식하는가? 투수와 야수의 분업화는 지명타자와는 무관하게 진행되어 온 변화일 뿐이다.

 

여섯째, 보복의 우려가 없어서 투수가 아무렇지 않게 위협구를 던질 수 있다. 원래 위협구는 양팀의 중심 타자를 상대로 주고받는 것이지, 타석에 선 투수에게 던지는 게 아니다. 투수에게 보복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 1루 쪽으로 땅볼을 친 뒤 베이스를 커버하기 위해 들어오는 투수를 티 나지 않게 걷어차는 것이다.

 

일곱째, 좋은 투수는 완투로 승부를 끝내므로 지명타자를 써도 득점력에는 큰 변화가 없다. 지명타자 시행 초기에는 이런 지적이 그럴듯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완투가 매우 희귀해진 오늘날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게다가 내셔널리그에서 아메리칸리그로 옮긴 투수 가운데에는 타자 8명을 상대하다 9명을 상대하게 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성적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양키스에 두 번 입단해 두 번 모두 실패한 하비에르 바스케스(Javier Carlos Vazquez)가 대표적인 사례다.

 

여덟째, 투구와 타격 성적의 비교가 무의미해진다. 카를로스 잠브라노나 마이크 햄튼 같은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투수의 타격 성적은 애초에 사람들의 관심 밖이다. 마이카 오윙스는 2009년 3홈런에 장타율 .537을 기록했지만 그 때문에 투수로서 그가 받는 평가가 더 나아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타격 때문에 내셔널리그 투수들이 더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내셔널리그의 투수들이 번트를 대고 2루에서 홈까지 달리느라 고생할 때 아메리칸리그 투수들은 조시 해밀턴 다음에 나오는 블라디미르 게레로를 상대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한다.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 게다가 최근에는 세이버메트릭스의 발전으로 투수와 타자, 수비 성적의 가치를 매우 정확하게 측정하는 일이 가능해서 투구와 타격 성적의 비교는 그 어느 때보다 용이해진 상태다.

 

아홉째, 번트가 줄어 야구의 묘미도 줄어든다. 미국에서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 퍼시픽리그와 한국 야구의 예를 보면 지명타자가 번트를 줄인다는 생각은 수긍하기 어렵다. 특히 번트와 야구의 묘미가 정비례 관계에 있다는 주장은 번트를 즐겨 쓰는 감독들조차도 동의하기 힘든 얘기다. 그 사람들도 번트가 ‘재미’보다는 ‘승리’를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근거의 타당성이야 어쨌든 센트럴리그가 끝까지 지명타자제를 거부하면서 일본 야구는 오늘날까지도 양리그가 서로 다른 규칙 아래 경기하고 있다. 일본시리즈의 경우 1985년부터 퍼시픽리그 팀이 홈일 때 DH를 사용하고, 센트럴리그 팀의 홈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야구에서 지명타자가 등장한 시기는 일본보다도 빨랐다. 1973년 7월 20일 열린 제10회 실업야구 올스타전에서 한일은행의 김응룡과 육군의 박해종이 국내 1호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이후 상당수 야구 관계자 사이에서 “성인야구 붐 조성을 위해 지명타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지명타자로 나올 만한 타자가 부족하고 프로의 제도를 아마추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논란 끝에 지명타자는 실업야구 올스타전에서만 시범적으로 적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연례 행사로나 볼 수 있던 지명타자제가 본격적으로 채택된 것은 1979년에 들어서다. 대한야구협회는 1978년 열린 제28회 백호기대회에서 시범적으로 지명타자제를 가동한 뒤 이듬해부터 공식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지명타자는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에도 그대로 사용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4년부터는 일선 지도자들의 요구로 고등학교 야구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다.

 


지명타자의 불확실한 미래

경기 시간 3시간 내내 글러브를 낀 채 뛰고 구르는 야수들의 눈으로 보면 지명타자처럼 편하게 놀고먹는 일도 없다. 수비수들은 경기 중에 잠시도 쉴 틈이 없다. 타자에 맞게 수비 위치를 조정하고, 투수가 던지는 공에 온 신경을 집중한 뒤 총알처럼 날아오는 타구를 잡아야 하며 주자의 슬라이딩을 피해 점프해서 송구하는 것도 일이다. 운 나쁘게 포수 마스크를 썼을 경우 고생은 백배로 늘어난다. 무거운 보호 장비를 줄레줄레 몸에 달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기를 수 백 번, 어깨와 허벅지에 공을 맞기를 수차례, 1루까지 전력으로 뛰어 커버 플레이하기를 수십 차례 반복해야 한 경기가 끝난다. 육체노동이 따로 없다.

 

반면 지명타자는 어떤가. 안경현 SBS ESPN 해설위원은 “지명타자는 네 번 나와서 전부 삼진으로 물러나면 땀 한 방울도 안 흘리고 경기가 끝나는 셈”이라고 말한다. 칼럼니스트 조지 벡시는 ‘야구의 아버지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살아 돌아와 현대의 야구장을 돌아볼 경우’를 가정한 뒤 그가 지명타자를 본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고 썼다. “필드에서는 수비도 안 하면서 몇 회 만에 가끔씩 나와서 방망이만 휘두르고 사라지는 저 주제넘은 인간은 뭐지?”

 

아담 던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슬러거지만 1루와 외야에서의 수비력은 평균 이하로 평가 받고 있다. 올해 아메리칸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팀을 옮긴 그는 100경기 가량 지명타자로 나서게 될 전망이다. <사진: 케이채 kaychae.com>

 

 

불공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99년 말 AP통신은 메이저리그 주전급 선수 501명의 연봉을 조사해 포지션 별로 발표했다. 놀랍게도 전체 1위를 차지한 포지션은 지명타자였다. 호세 칸세코(Jose Canseco), 대릴 스트로베리(Darryl Eugene Strawberry) 등이 포진한 지명타자는 404만 달러로 중간계투 요원들의 97만 9천 달러보다 4배나 많은 연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마크 맥과이어(Mark McGwire), 모본(Maurice Samuel Vaughn) 등의 1루수로 349만 달러, 3위는 게리 셰필드(Gary Antonian Sheffield) 등이 포함된 외야수, 선발 투수는 280만 달러로 4위에 그쳤다. 그러니까 일 년에 많아야 600번 타석에 나오는 게 하는 일의 전부인 지명타자가 연간 1,000이닝 이상 강도 높은 수비 노동에 시달리는 수비수나 어깨가 부서져라 공을 던지는 투수들보다 더 많은 돈을 챙긴 것이다.

 

아마 어떤 이들은 “그 대신 지명타자는 타석에서 확실하게 몸값을 하지 않는가”라고 반론을 제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 기록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2010년 메이저리그 지명타자들이 기록한 성적의 평균은 타율 2할5푼2리, 출루율 3할3푼2리, 장타율 4할2푼6리에 22홈런 83타점이었다. 이는 유격수인 알렉스 곤잘레스(Alex Gonzalez)의 시즌 성적(타율 2할5푼 23홈런 88타점)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중요한 건 지명타자는 수비를 하지 않지만 알렉스 곤잘레스는 필드에서도 리그 최정상급 수비수라는 점이다. 그리고 지난해 메이저리그 최고의 지명타자였던 데이비드 오티즈(David Americo Ortiz)의 대체 선수 대비 팀 승리 기여도(WAR)가 3.3에 불과했던 반면 알렉스 곤잘레스는 같은 스탯에서 3.4를 기록했다. 이는 팀 승리 기여도를 측정할 때 포지션별 난이도에 따른 조정 점수가 유격수는 +7.5 runs인데 비해 지명타자는 -17.5 runs로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포수는 +12.5 runs). 통계의 발달은 화려한 홈런 쇼로 부풀려졌던 지명타자의 가치를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놓고 있다.

 

ESPN의 칼럼니스트 팀 커크지안은 “스테로이드 시대 이후 구단들이 투수력과 수비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지명타자 제도가 큰 변화를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아메리칸리그 구단들도 이제 로스터에 투수를 12명~13명씩 두는 편을 선호하고 이 때문에 로스터를 좀 더 폭넓게 운영할 필요성이 커졌다. “구단들이 로스터 내에 수비가 불가능한 선수를 두는 일을 꺼리게 되면서 이제는 한 명의 타자를 지명타자로 고정하는 대신 여러 선수를 로테이션으로 기용하고 있다”는 게 커크지안의 얘기다.

 

실제로 2008년과 2009년에 시즌 100경기 이상 지명타자로 출전한 선수는 각각 4명에 불과했으며 지난해에는 5명밖에 없었다. 10년 전인 1991년에는 11명이었다. 뉴욕 양키스는 지난해 무려 16명의 선수를 지명타자로 내보냈으며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20경기 이상 지명타자로 나간 선수가 4명, 10경기 이상 나선 선수가 8명이나 됐다. 타이거즈 감독 짐 릴랜드는 “과거와 같은 지명타자의 시대는 끝났다”면서 “이제 지명타자는 상대 선발투수에 맞게 매치업을 만들거나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한 방편이 됐다”고 단언할 정도다. 그와 함께 지명타자를 배치하고 타순을 짜는 일은 내셔널리그 감독들이 경기 후반 대타 기용을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것만큼이나 골치 아프고 복잡한 일로 변해 가고 있다.

 

 

한국프로야구와 지명타자

이런 현상은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마찬가지다. 확실한 지명타자감을 갖춘 한두 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구단이 여러 선수를 번갈아 가며 지명타자 자리에 투입하고 있다. 지난해 LG의 경우 박용택, 이택근, 이진영 등 뛰어난 운동 능력을 지닌 선수들을 교대로 DH 자리에 넣었다. KIA 역시 나지완, 김상현, 채종범, 최희섭을 비롯해 차일목, 김상훈 등 포수까지 지명타자로 기용했다. 이는 뚜렷하게 두각을 드러낸 선수가 없는 탓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주전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삼성도 양준혁, 박석민, 최형우, 채태인 등이 고루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지명타자가 나이 들고 수비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을 위한 자리라는 생각은 거의 사라졌다. 이제는 젊고 빠르고 수준급의 수비를 갖춘 선수들도 체력을 안배하기 위해, 또는 포지션 중복으로 자리가 없을 경우 벤치에 앉는 대신 지명타자로 출전 하고 있다.

 

프로야구 80년대를 주름잡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한 버스에 모였다. 가운데 김성한(전 KIA 감독)은 입단 첫해 투수와 타자를 겸하며 투수로는 10승을, 타자로는 3할을 쳐낸 '야구천재'였다. 과거에는 김 전 감독처럼 투타 양쪽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들이 아주 많았다. 고교야구의 지명타자 제도가 선수의 잠재력을 '제한'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진: 어우홍 제공>

 

 

롯데 홍성흔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지난해엔 타율 3할5푼에 26홈런 116타점으로 생애 최고의 성적을 내며 롯데 타선을 이끌었다. 포수였던 그가 지명타자로 전향한 것은 2007년으로, 당시 그는 ‘더 이상 포수로 기용하기 어렵다’는 두산 코칭스태프의 판단에 따라 마스크를 벗고 타석에만 들어서게 됐다. 지명타자로 돌아선 많은 선수들이 그렇듯이 “수비수로는 끝났다”는 평가를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이 끝난 뒤 홍성흔은 글러브를 다시 손에 들었다. 그리고 외야로 나가 좌익수 수비 연습을 시작했다. 양승호 롯데 신임 감독이 지명타자 자리에 홍성흔과 함께 이대호, 강민호를 번갈아가며 기용할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양승호 감독은 “이대호가 몸이 좋지 않아 1루를 볼 수 없거나 강민호가 부상으로 포수를 보기 어려울 때 홍성흔이 지명타자로밖에 나설 수 없다면 세 선수가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시즌을 치르다 보면 세 선수 가운데 누군가는 라인업에서 빠져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홍성흔이 좌익수로 나설 수 있다면 아프거나 휴식이 필요한 선수를 지명타자로 기용하면서 강타선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양 감독의 계획은 최근 메이저리그의 흐름과 일치하는 것이다. 짐 릴랜드 타이거즈 감독은 ESPN과 인터뷰에서 “로스터 활용 폭이 넓어지면 감독으로서 매우 유리하다”면서 “여러 포지션으로 기용할 수 있는 선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말했다.

 

자기 포지션이 생기는 일은 지명타자로 뛰는 선수에게도 분명 득이 된다. 오랜 기간 포지션 플레이어로 뛰다 지명타자로 전향한 선수들이 항상 하는 얘기가 “타격감을 잡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거칠게 말해 지명타자는 한 경기에 대타로 네다섯 번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대타로 나가서 좋은 타격을 할 가능성은 수비를 하면서 방망이를 칠 때보다 훨씬 떨어지게 마련이다(2010년 프로야구 전체 대타 타율은 2할8리였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선수가 지명타자로 출전했을 때보다 수비수로 나섰을 때 공격에서 훨씬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난해 넥센 강병식은 지명타자일 때 타율 2할7푼4리를 기록한 반면 1루수일 때는 4할2푼3리를, 우익수로는 3할8리의 맹타를 휘둘렀다.

 

그리고 지명타자밖에 못하는 선수는 타석에 들어설 때 외에는 효용가치가 거의 없기에, 공격에서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곧바로 팀에서 쓸모 없는 존재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팀의 입장에선 공격이 약한 지명타자를 그 자리에 계속 기용할 이유가 없다. 방망이가 더 좋은 선수로 대체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수비 포지션이 있을 경우 선수에게는 공격 외의 방법으로도 팀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생기며, 타격에서의 부진을 만회할 기회도 더 많이 주어질 수 있다. 선수 생명을 오래 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지명타자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낸 마해영(현 XTM 해설위원)은 삼성 시절 수시로 2루와 1루 수비 연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지명타자가 왜 수비연습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팀 사정상 지명타자를 하고 있지만 언제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내 수비력이 필요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또 내가 삼성에서만 야구하라는 법도, 1루수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내 가치를 유지하고 끌어올리기 위해서도 수비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중앙일보> 2003.3.25) 그는 지명타자의 아킬레스건이 무엇인지 일찌감치 누구보다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홍성흔이 감독의 좌익수 전향 지시를 흔쾌히 받아들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번 지명타자는 영원한 지명타자였던 프로야구의 풍토는 이제 옛날이야기다.

 

지명타자의 위상이 과거와 크게 달라지면서 메이저리그에서는 최근 들어 제도의 대대적인 변화가 추진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한쪽에서는 지명타자 제도를 하나로 통합해서 양대 리그가 똑같이 시행할 것을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해 올스타전을 내셔널리그 구장에서 치르더라도 양 팀 다 지명타자를 기용할 수 있도록 규칙이 변경됐는데, 이는 내셔널리그 홈에서 아메리칸리그 룰로 경기를 하는 사상 첫 사례를 낳게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다. 반면 지명타자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는 진영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이들은 지명타자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높은 득점 생산력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일부 보도에서는 사무국이 조만간 선수노조와의 협상을 통해 지명타자의 통합과 폐지 중 어느 한 쪽으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39년 내내 계속된 지명타자 논쟁은 이제 시대의 변화와 함께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의 경우 지명타자의 존폐에 대한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찬반이 분분한 미국과 달리 우리에게는 지명타자가 매우 자연스럽고, 심지어 친숙하게까지 느껴지기 때문이다. 프로야구가 시작될 때부터 지명타자가 있었고 현장이나 팬들 사이에서 특별히 지명타자에 대한 불만이 제기된 적도 없었다. 어떤 이들은 지명타자를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투수가 타격을 하고 주루 플레이를 하는 게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 정도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어떤 변화가 벌어지든 한국의 지명타자 제도는 당분간 건재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해마다 연말이면 생전 잡을 일 없던 황금색 글러브를 손에 들고 어색한 미소를 짓는 그해 최고의 지명타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지난해 KIA가 1라운드에서 선택한 한승혁은 고교 시절 투수와 타격 양쪽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지명타자 제도로 인해 등판일에는 타자로 나설 수 없었고, 소속팀은 공격력에서 손해를 봐야 했다. KIA 입단 직후 팔꿈치 수술을 받은 그는 경우에 따라 타자로 전향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사진: 송승현>

 

 

정작 문제는 아마추어 야구다. 2004년 이후 지명타자제가 실시되면서 고교 야구가 ‘반쪽짜리 선수’를 양산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너무 일찍 투수와 타자 한 쪽으로 진로를 정하면서 선수의 재능을 제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지도자는 “과거에는 재능 있는 선수들은 투타에서 모두 뛰어났다”며 “근래에는 투수가 되면 아예 방망이를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걱정”이라고 말한다. 갈수록 재능 있는 타자가 줄어드는 이유가 지명타자 제도에 있다는 얘기다. 다른 고교 코치는 “신인 중에 좋은 외야수가 줄어드는 이유도 지명타자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유망주들이 전부 투수만 하려고” 하다 보니 결국 외야는 재능 없는 선수들이 맡는 자리가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야구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라던 지명타자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엉뚱하게도 39년이 지난 오늘날(2011년) 한국 고교 야구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배지헌
배지헌은 야구 전문 블로그 <야구라>의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 [야구생활], [스카우팅 리포트 베이스볼 2011] 등의 필진으로 참여했으며, 현재 네이트 스포츠 Pub에 기고하고 있다.


발행일
2011.03.31

 

감수 신명철 (前 스포츠 2.0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