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지명타자 제도는 이단 취급과 온갖 반대 속에서도 빠른 속도로 리그에 자리를 잡아 나갔다. 결과도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이었다. 새로운 볼거리의 등장은 아메리칸리그뿐만 아니라 리그 전체의 관중 수 증가로 이어졌고, 투고타저 역시 시행 1년 만에 아메리칸리그 평균 타율이 2푼 가까이 상승하면서 상당 부분 해소됐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리그에서도 1975년 지명타자 제도를 시행하며, 미국에서 시작된 야구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아메리칸리그가 퍼시픽리그로, 내셔널리그가 센트럴리그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동일한 내용과 양상의 논쟁이 일본 야구계에서 펼쳐진 것이다.
지명타자 불가론
지명타자 제도에 반대하는 센트럴리그의 생각은 꽤 완고했다. 당시 센트럴리그 사무국은 ‘지명타자 불가론’으로 무려 9가지나 되는 이유를 제시했는데, 그 내용을 지명타자 시행 이후 나타난 결과와 비교해 보면 여러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띈다. 다음은 센트럴리그가 내세운 지명타자 불가론의 9개 조항이다.
첫째, 지명타자는 한 세기 반이나 흐른 야구의 전통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1930년대 활약한 베이브 루스(Babe Ruth)의 경우 그 육중한 몸으로 선수 생활 마지막 시즌까지 외야에서 뛰어다녀야 했다. 아마 그가 현대의 야구장에 와서 블라디미르 게레로(Vladimir Guerrero)나 짐 토미(James Howard Thome) 처럼 덕아웃에 앉아 있다 가끔 나와서 타격만 하고 들어가는 선수들을 보면 불같이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야구가 근본적으로 뒤집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밤비노의 시대나 오늘날이나 투수는 공을 던지고 타자는 친다. 야구의 기본적인 경기 방식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기껏해야 선수들이 씹는 담배의 종류가 늘어나고 포수가 하키 마스크를 쓰게 된 정도가 전부다. 그 외의 기술적인 변화는 야구의 진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발달이라고 봐야 한다.
둘째, 투수를 대신해 대타를 내거나 어떤 대타를 낼까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야구 전술의 중심인데 지명타자는 이런 재미를 없앤다. 지명타자 도입이 감독이 내려야 하는 결정의 수를 약간 줄어들게 한 것은 사실이다. 아마 양키스나 보스턴의 감독이라면 7회까지 잘 던지고 있는 투수를 득점 찬스에서 대타로 교체하는 문제를 두고 고뇌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투수 자리에 대타를 내는 결정이 야구 전술의 중심이라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특히 미국보다 작전 구사가 훨씬 많은 일본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또한 1번부터 9번까지의 라인업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는 일도 대타 작전만큼이나 감독의 흰머리를 늘어나게 하기에 충분하다. 야구는 원래 한 가지 고민이 해결되면 다른 쪽에서 고민이 생기는 종목이다.
셋째, 투수도 타격에 참가한다는 기본적인 사고를 희박하게 한다. 지명타자를 사용하는 리그에서는 어쩌다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게 되면 굉장한 화제가 되곤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주장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과 일본 리그의 절반에서는 투수도 타격에 참가하고 있으며, 이는 아마추어 야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메리칸리그 투수들도 일단 내셔널리그로 옮기면 타자로 나서야 하며, 이는 투수가 공격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여전히 상기하게 한다.
넷째, 지명타자 제도의 규정이 까다로워 팬의 혼란을 야기한다. 제도가 정착된 오늘날, 잘 훈련된 야구 팬은 지명타자 제도 정도를 갖고 혼란스러워 하지는 않는다. 사실 야구 규칙은 원래가 까다롭고 복잡한 것이다. 그리고 지명타자 규정이 까다로운 만큼 지명타자가 없는 내셔널리그에서 종종 벌어지는 더블스위치 같은 상황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다.
다섯째, 베이브 루스나 스탠 뮤지얼 같은 대선수들도 다 투수에서 시작해 야수로 전향했다. 프로에서는 투타 전환이 과거처럼 자주 일어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마추어 단계에서는 여전히 많은 선수가 투타를 겸하고 있으며, 프로에서도 마이너리그에서는 포지션을 바꾸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지적은 내셔널리그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가능하다. 과거 투수로 이름을 날리다 프로에서 야수로 전향한 선수들은 왜 경기 도중 팀이 필요로 할 때 마운드에 올라와서 던지지 않는가? 어째서 야수가 투수로 등판한 날에는 스포츠 뉴스의 ‘진기명기’ 코너를 어김없이 장식하는가? 투수와 야수의 분업화는 지명타자와는 무관하게 진행되어 온 변화일 뿐이다.
여섯째, 보복의 우려가 없어서 투수가 아무렇지 않게 위협구를 던질 수 있다. 원래 위협구는 양팀의 중심 타자를 상대로 주고받는 것이지, 타석에 선 투수에게 던지는 게 아니다. 투수에게 보복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 1루 쪽으로 땅볼을 친 뒤 베이스를 커버하기 위해 들어오는 투수를 티 나지 않게 걷어차는 것이다.
일곱째, 좋은 투수는 완투로 승부를 끝내므로 지명타자를 써도 득점력에는 큰 변화가 없다. 지명타자 시행 초기에는 이런 지적이 그럴듯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완투가 매우 희귀해진 오늘날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게다가 내셔널리그에서 아메리칸리그로 옮긴 투수 가운데에는 타자 8명을 상대하다 9명을 상대하게 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성적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양키스에 두 번 입단해 두 번 모두 실패한 하비에르 바스케스(Javier Carlos Vazquez)가 대표적인 사례다.
여덟째, 투구와 타격 성적의 비교가 무의미해진다. 카를로스 잠브라노나 마이크 햄튼 같은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투수의 타격 성적은 애초에 사람들의 관심 밖이다. 마이카 오윙스는 2009년 3홈런에 장타율 .537을 기록했지만 그 때문에 투수로서 그가 받는 평가가 더 나아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타격 때문에 내셔널리그 투수들이 더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내셔널리그의 투수들이 번트를 대고 2루에서 홈까지 달리느라 고생할 때 아메리칸리그 투수들은 조시 해밀턴 다음에 나오는 블라디미르 게레로를 상대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한다.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 게다가 최근에는 세이버메트릭스의 발전으로 투수와 타자, 수비 성적의 가치를 매우 정확하게 측정하는 일이 가능해서 투구와 타격 성적의 비교는 그 어느 때보다 용이해진 상태다.
아홉째, 번트가 줄어 야구의 묘미도 줄어든다. 미국에서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 퍼시픽리그와 한국 야구의 예를 보면 지명타자가 번트를 줄인다는 생각은 수긍하기 어렵다. 특히 번트와 야구의 묘미가 정비례 관계에 있다는 주장은 번트를 즐겨 쓰는 감독들조차도 동의하기 힘든 얘기다. 그 사람들도 번트가 ‘재미’보다는 ‘승리’를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근거의 타당성이야 어쨌든 센트럴리그가 끝까지 지명타자제를 거부하면서 일본 야구는 오늘날까지도 양리그가 서로 다른 규칙 아래 경기하고 있다. 일본시리즈의 경우 1985년부터 퍼시픽리그 팀이 홈일 때 DH를 사용하고, 센트럴리그 팀의 홈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야구에서 지명타자가 등장한 시기는 일본보다도 빨랐다. 1973년 7월 20일 열린 제10회 실업야구 올스타전에서 한일은행의 김응룡과 육군의 박해종이 국내 1호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이후 상당수 야구 관계자 사이에서 “성인야구 붐 조성을 위해 지명타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지명타자로 나올 만한 타자가 부족하고 프로의 제도를 아마추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논란 끝에 지명타자는 실업야구 올스타전에서만 시범적으로 적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연례 행사로나 볼 수 있던 지명타자제가 본격적으로 채택된 것은 1979년에 들어서다. 대한야구협회는 1978년 열린 제28회 백호기대회에서 시범적으로 지명타자제를 가동한 뒤 이듬해부터 공식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지명타자는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에도 그대로 사용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4년부터는 일선 지도자들의 요구로 고등학교 야구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다.
지명타자의 불확실한 미래
경기 시간 3시간 내내 글러브를 낀 채 뛰고 구르는 야수들의 눈으로 보면 지명타자처럼 편하게 놀고먹는 일도 없다. 수비수들은 경기 중에 잠시도 쉴 틈이 없다. 타자에 맞게 수비 위치를 조정하고, 투수가 던지는 공에 온 신경을 집중한 뒤 총알처럼 날아오는 타구를 잡아야 하며 주자의 슬라이딩을 피해 점프해서 송구하는 것도 일이다. 운 나쁘게 포수 마스크를 썼을 경우 고생은 백배로 늘어난다. 무거운 보호 장비를 줄레줄레 몸에 달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기를 수 백 번, 어깨와 허벅지에 공을 맞기를 수차례, 1루까지 전력으로 뛰어 커버 플레이하기를 수십 차례 반복해야 한 경기가 끝난다. 육체노동이 따로 없다.
반면 지명타자는 어떤가. 안경현 SBS ESPN 해설위원은 “지명타자는 네 번 나와서 전부 삼진으로 물러나면 땀 한 방울도 안 흘리고 경기가 끝나는 셈”이라고 말한다. 칼럼니스트 조지 벡시는 ‘야구의 아버지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살아 돌아와 현대의 야구장을 돌아볼 경우’를 가정한 뒤 그가 지명타자를 본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고 썼다. “필드에서는 수비도 안 하면서 몇 회 만에 가끔씩 나와서 방망이만 휘두르고 사라지는 저 주제넘은 인간은 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