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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30년 ①] 원년감독 3인의 개막전 회동

나 그 네 2011. 4. 6. 17:59


[일간스포츠 김동환]

프로야구가 대망의 30번째 시즌에 돌입했다. 누구보다 감격적으로 그 순간을 지켜본 이들이 있다. 29년 전, 프로의 '프'자도 모르는 갓난 팀들을 맡아 야구의 진수와 묘미를 한껏 펼쳐 보이며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게 했던 주인공들. 1982년 원년 사령탑 김영덕(75) 전 OB(두산) 감독과 백인천(68) 전 MBC(LG) 감독, 그리고 박영길(70) 전 롯데 감독이다.

지난 2일 두산과 LG의 서울 라이벌 개막전이 열린 잠실구장에서 그들이 30년 만의 감격적인 회동을 했다. 원년 OB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김 전 감독이 30년 만에 제작된 우승반지를 후배들에게 선사받았고 라이벌이었던 백 전 감독과 박 전 감독이 축하를 보냈다. 당시 함께 그라운드를 호령했던 박현식 전 삼미 감독, 서영무 전 삼성 감독, 김동엽 전 해태 감독이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남아 있는 세 사람의 감격은 더욱 컸다.


기자 "29년 전에 프로야구를 열었던 분들이십니다. 30번째 개막을 보는 느낌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김영덕 "원년 우승 멤버라고 30년 만에 이렇게 불러 주니까 너무 고맙고 감격스럽네요. 먼지 날리는 그라운드에서 이광환 코치, 김성근 코치와 얼싸안고 기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30년 전 일이네요. "

백인천 "형님들, 야구장 앞에 사람들 줄 서 있는 거 보셨소. 원년에 호기심으로 동대문구장 앞에 모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야구의 맛에 푹 빠져서 이렇게 모여들고 있으니 얼마나 뿌듯한 일이오."

박영길 "진짜 프로야구가 이렇게 잘 자리잡아 국민스포츠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게 다행스럽고 원년 감독의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자랑스러운 지 몰라요."

기자 "원년 개막 기억이 많이 나시나요?"

박영길 "프로 출범 비화를 내가 들려 드릴게. 1981년 5월 중순이었어요. 당시 나는 롯데 실업팀 감독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날 청와대에서 오라는 거야. 갔더니 당시 축구협회장이던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도 함께 불려 온 거에요. 그런데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이 국민들의 관심사를 바꿔야겠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을 지 아무거나 말을 해 보라고 해요.


속으로 프로야구 얘기나 할까 했는데 진짜로 프로스포츠 한번 해보자고 하는 거에요. 최 회장이 축구는 내일이라도 브리핑할 수 있겠다고 하길래 우리도 하겠다고 했죠. 다행히 1975년에 야구협회 이용일 전무가 엉성하게라도 만들어 놓은 계획서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용일·이호헌 두 사람이 브리핑을 했는데 당시에 축구 쪽에서는 150억원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고 야구 쪽에서는 지원이 없어도 된다고 했죠. 그래서 야구가 다음해 바로 프로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거에요."

김영덕 "사실 1년도 안 돼서 프로를 출범한다는 게 말도 안 됐지. 어제까지 실업팀이던 것을 하루 아침에 프로로 옷만 바꿔 입혀 놓은 거지."

기자 "그렇게 엉성하게 시작했던 프로야구가 어떻게 첫해부터 대박이 나고 이렇게 국민스포츠로 30주년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요."

김영덕 "팬들의 관심을 끄는 건 무조건 기록이에요. 이 양반(백인천)이 대단한 게 일본에서 오자마자 4할대 타율 기록하지 않았겠어요. 또 박철순도 미국에서 와서 22연승을 거두고, 투타의 핵심 스타가 있어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봐요."

박영길 "맞아요. 원년에 확실한 기폭제가 있었어요. 일본 프로야구에서 20년 뛰었던 백인천이 선수 겸 감독 뛴 게 그 중 하나고 박철순이 미국에서 온 게 하나에요. 거기다가 개막전부터 역전 만루홈런이 나온게 역시 프로야구는 다르구나 하고 여겨질 수 있는 기폭제가 됐어요. 그 이후 최동원 선동열 김일융 장명부까지 불세출의 스타플레이어가 계속 나왔죠. 또 일본야구의 좋은 점과 미국야구의 좋은 점을 다 받아들였기 때문에 빨리 클 수 있었어요."

백인천 "사실 나는 모험이었어요. 일본에 갈 때도 모험이었지만 돌아올 때도 모험이었어요. 하지만 한국에 프로야구가 처음 시작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사명감을 가졌어요. 한국 프로야구의 결정적인 사건은 역시 (MBC와 삼성의) 개막전이죠. 동점홈런에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 그런 시합은 내 야구 인생에 한 두번 밖에 없었어요. 프로야구가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팬들에게도 확실히 심어줬다고 봐요. 그게 만약에 시시하게 끝났으면 첫해 그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박영길 "맞아요. 그리고 그해 한국시리즈에서도 만루홈런으로 극적인 승부 나왔잖아요."

백인천 "개막전 끝내기 홈런은 사실 이종도가 치는 게 아니었어요. 1사 2·3루에서 유승안한테 볼넷을 내는 것 같길래 치지말고 기다리라고 했죠. 그래서 다음 타자인 내가 스타가 되거나 못되거나 했을 거에요. 그런데 유승안이 스리볼에서 느닷없이 쳐서 아웃되고 나는 고의4구로 걸어나갔죠. 어떻게 보면 만약 유승안이 볼넷으로 나갔으면 내가 안타를 쳤을 거라는 보장이 없어요.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투수였던) 이선희가 스타가 됐을 수도 있어요."

박영길 "그거 알아요? 이선희는 당시 국가대표 왼손 에이스로 일본팀 킬러였어요. 지금의 류현진급이었죠. 그런데 그런 투수가 개막전 만루홈런을 맞고 한국시리즈에서도 만루홈런을 맞으니까 더 극적이었던 거에요."

김영덕 "그건 드라마였지.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해도 안되는 거야."


백인천 "진짜 농담이 아니고 이선희한테는 KBO에서 공로패 줘야 돼요. 프로야구 제1의 공신이에요."

김동환 기자 [hwany@joongang.co.kr]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