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용 학사요람이라고....지금은 어느 고등학교에서건 이런 거 만들려나 싶네요.
1961년 2월 졸업식 행사용 팜플렛인데요.
당사자들은 그해 봄 5.16이 일어나고, 그래서 세상이 또 어떤 식으로 바뀔지 전혀 몰랐겠죠.
그로부터 54년이 흘렀네요.
'국제시장'의 덕수와 비슷한 연배분들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남다르겠죠...
* 관심있으신 분들께 자료가 될 수 있도록, 사진은 대형 파일로 올립니다.
가리방. 가리방을 긁다.
반듯한 글씨체입니다.
내용과 식의 순서가 의미 있습니다.
졸업식 행사는 '식순', '개식사, 폐식사'라고 합니다. 총회는 '회순','개회사'라고 하듯이 말이죠.(음. 식순은 지금도 통할 듯 싶은데, 개식사는...~)
7. '학교장 회고'.... 회고라...이 표현이 뜻깊네요....~
13. 교가 제창......교가 제창이 마지막입니다. 아마 졸업생은 가슴이 뭐라 뭉클했겠죠.
1959년 입학할 때, 제일 먼저 배운 노래가 교가였을테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아마 반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교가를 잊지 않고 있을 겁니다.
자그마치 페이지가 26이나 됩니다. 사이즈는 연필보다 조금 큰...
교가입니다.
가리방으로 긁다보니 작사가가 '박우석'인 듯 싶은데, 박두석으로 잘못 적혀 있네요.
박종화가 그 유명한 소설가 월탄 박종화일까요?
참고로 이 교가는 해방 후에 작사작곡된 겁니다.
일제 때는 달랐죠. 일본어로 불렸습니다. 가사도 달랐습니다.... -> 일제때 진고 교가에 얽힌 에세이
그러고 보니 교가(정확히 말하자면 응원가)에 얽힌 제 에피소드 하나입니다. -> 에피소드(준비중)
일제 때 응원가는 역시 지금하고 달랐습니다....
의외로, 33년 박물관이 먼저 개관하고, 2년 뒤 도서관이 오픈했네요.
일제 시대 때는 기숙사가 있었는데, 그 사실은 여기에 담겨 있지 않습니다...
6.25 때 진주는 전화를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진주고 역시 마찬가지였네요. 전소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다닐 때 본관은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두꺼웠는데, 전쟁의 트라우마였을까요.
4288년에 완공 되었다는 거를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지금에는 이 건물을 허물고 새로이 올렸다고 하죠.
1958-1991년 시절을 엿볼 수 있는 편린입니다.
3년 개근, 1년 개근, 정근이 상당히 적었네요. 의외입니다.
말그대로 원서를 넣었다는 통계입니다.
당시는 전후기 없이 원서를 딱한번 밖에 못 넣었나 봅니다.
이 자료를 만드신 분은 학벌에 대해 편견이 없었나 봅니다.
오늘날 처럼 서열화에 기초하지 않고 있습니다.....연세대학교가 한참 밑에 있습니다.
당시 서라벌 예술대학도 4명이나 갔었다는 거. 동양의대는 어디였을까요? 부산연세대학이라.....
과목이 관심이 갑니다.
음...농업도 없고 공업도 없고 기술도 없군요...
겸임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윤리도 없고요..제2외국어는 독어라는 거.(독어라는 건 아마 일제 때(일본과 독일은 동맹국)의 흔적이 아닐까요? 독어말고는 다른 언어를 할 수 있는 선생님이 없었을 것 같네요.)
공업화 이전의 풍경. 윤리가 없는 건 민주당 정권의 교육관이 담겨 있는 거겠죠.
맨 아래 학생회 서기도 있었다는 거.
''''''''''
이제 아래부터는 졸업생 명부입니다.
이름과 고향 그리고 대학 지망이 적혀 있습니다.
가나다 순이 아닙니다.
생년월일일 수도 있겠고, 키 순일 수도 있겠죠.
맨 아래 전 고흥출신도 있다는 거.
출신 지역의 추이가 어떤지는 한번 통계를 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이 해는 진주가 50퍼센트정도 되는 걸로 보입니다.
[출처] 1961년 진주고등학교 졸업식 학사요람...|작성자 dar_s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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