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50년대 이후 지리산은 특히 부산권에서 열풍이 불었다. 그래서 진주는 그 중간에 위치하여,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지리산의 거점도시 역할을 했을 테다.
게다가 앞으로는 한려수도 바다까지 아우르는 데, 진주의 중심에는 촉석루가 있다. 일제 시대 때부터 촉석루는 인기있는 여행지였고, 그 여파는 7,80년대까지 이어졌다.
지금은 진주하면 지리산이나 촉석루보다는 유등 축제가 아닐까 싶다. 유등 축제는 불꽃놀이와는 다르다. 주최측이 준비한 불꽃 대포 한대와 순식간에 사라지는 군중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돌이켜 보건대, 그 시절은 지금만큼 화려하지 않았으나, 유등은 진주 시절의 한 기억점이다. 물결위에 둥둥 떠가던 유등. 그리고 마치 유등처럼 진주교를 떠가던 시민들. 얼굴은 형형색색의 유등에 비치어 환한. 11월달 밤추위였지만.
근대 여행지로서의 그시절 진주가 어떠했는가는 진주고등학교와 떼어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진주고등학교 자료도 그래서 몇몇 올려 보았다.
ㅁ 진주고등학교 ->61년도 졸업식 식순표에 보여지는 그시절
[출처] 경상남도 진주시...|작성자 dar_sh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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