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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목 교수에게 물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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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에 자양분이 된 숨겨진 습관(secret habit)은?
- 아무리 늦게 자도 일찍 일어난다. 보통은 밤 11시에 잠자리에 들어가지만 일이나 회식 때문에 늦게 귀가해 오전 1~2시에 자도 오전 4시 반에는 일어난다. 신문과 책을 읽다가 6시에 집을 나선다. 승용차 안에서는 영어방송을 들으며 영어공부를 한다. 6시20분경 연구실에 도착하면 6시45분이나 7시부터 회의에 들어간다. 7시 반에는 동료 의사들과 환자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 치료법에 대해 연구한다.
- 2
- 내게 힘을 주는 경구나 명언은?
- “어제는 지나가서 없다. 내일은 안 왔다.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
- 3
- 슬럼프에 빠지면 무얼 하며 스스로를 달래나?
- 산을 찾는다. 분당의 집 앞에 불곡산이 있는데 1시간 반 정도 산을 오르내린다. 산을 찾으면 가슴이 편해진다. 굳이 힘들 때가 아니라도 토, 일요일에는 건강을 위해서 불곡산을 찾는다. 1년에 몇 차례 명산을 정해 전문의, 전공의들을 데리고 등산을 가기도 한다.
- 4
- 스무 살 때와 지금 내가 달라진 점은?
-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젊었을 때에도 내 영역을 만들면서 개척했고 지금도 그런 면에서 젊다고 생각한다.
- 5
- 내가 겪은 가장 아픈 실수와 교훈을 들려준다면?
- ‘힘들다’는 말을 내 사전에서 지워버렸다. 내가 맡는 분야는 환자가 숨지는 일이 드물지 않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가 많다. 10년 전에 식도암에 걸린 선배 의사를 수술했는데 합병증으로 숨진 적이 있다. 자녀들도 다 의사인데, 소송을 제기하고 온갖 군데에 민원을 제기해 가슴이 아픈 적이 있다. 그 때에는 환자 보호자한테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경지를 벗어났다.
- 6
-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 서울대병원장을 지내신 고 이영균 교수님이다. 언제나 선공후사(先公後私) 의 자세를 유지하셨다. 우리나라 흉부외과의 개척자 중 한 분이다. 뛰어난 리더십과 추진력을 가지셔서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 공교롭게도 이 교수님께서 식도암에 걸려 서울대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하지만 이미 암세포가 전신에 번져 제대로 치료해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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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감동시킨 사람이 있다면?
- 2005년 갑자기 은퇴를 선언한 샌드라 데이 오코너 미국 연방대법관이다. 그는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이었지만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남편과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최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남편은 부인도 못 알아 보는 상태였고 요양원에서 만난 다른 여성과 사랑과 빠졌다. 그러나 오코너는 남편이 정서적 안정을 찾고 있다며 좋아했다. 특히 그가 “젊어서의 사랑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황혼의 사랑은 상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한 대목에서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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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 수술 후 끝내 암을 못 이기고 돌아가신 많은 환자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극적으로 새 삶을 얻은 분들의 얼굴 역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7년 전 64세의 폐암 환자를 수술했는데 병원 중환자실에서 밤10시에 호출이 왔다. 심장이 마비됐다는 것이다. 이종철 병원장과 저녁 밥숟갈을 입에 떠 넣다가 달려갔다. 조치를 취하던 때의 아슬아슬한 순간이 방금 전처럼 잊히지 않는다. 지금은 건강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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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를 선택한 계기는?
- 어릴 적부터 막연히 의사를 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소꿉장난을 할 때에도 의사 역을 맡았다. 의대에서는 일찌감치 흉부외과로 진로를 정했다. 당시 흉부외과는 힘들지만 보람이 있어 ‘외과의 꽃’으로 불렸다.
- 10
- 흉부외과에서 이것만은 갖춰야 한다는 자질이 있다면?
- 남을 위한 이타심이 채워져야 한다. 그리고 심신이 강해야 한다. 후배 한 명에게 심장수술을 가르쳤는데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숨지는 것을 보고 개원가로 나갔다. 일부 의사처럼 환자가 죽는데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이익을 고집한다면 더 문제이겠지만, 흉부외과 의사가 실패에 매인다면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없다. 또 오래 수술해야 하므로 체력적으로도 강해야 한다.
- 11
- 흉부외과 의사를 정말 잘 선택했구나 싶었던 때는?
- 수술을 받고 극적으로 새 삶을 얻은 환자를 볼 때이다. 한 50대 남성은 30여 년 전 식도 수술을 받고 음식을 삼키지 못해 장으로 영양분을 투여 받으며 살고 있었다. 나는 소장을 이식해줬는데, 그는 30년 만에 음식을 먹게 됐다. 환자의 부인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몇 년 전 독극물을 마시고 식도가 타버린 40세 여성도 줄곧 음식을 못 먹다가 세 번에 걸친 수술을 받고 음식을 먹게 됐다. 다른 병원에서 치료가 되지 않아 우리 병원에 온 환자가 극적으로 회복했을 때에는 큰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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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일을 하며 내게 믿음을 주는 사람(선후배/동료)은?
- 영상의학과 이경수 교수와 호흡기내과 권오정, 김호중 교수 등 동료의사와의 팀 어프로치가 있었기에 우리 폐암치료팀이 강해졌다. 전문간호사를 비롯한 수술장 식구들 모두가 보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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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을 어렵게 설득해야 할 때 내가 쓰는 방식이 있다면?
- 솔직함이 최고다. 더러 환자가 떼를 쓰는 경우가 있지만 사람은 죽음 앞에서는 어린이가 되므로 맞서서는 안 된다. 보호자의 처지에 서서 참으면서 설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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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스무 살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은?
-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정복하고 싶다. 산을 좋아하지만 옛날에는 히말라야에 갈 엄두도 못 냈는데, 지금은 가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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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꼭 해내고 싶은 희망이 있다면?
- 삼성서울병원 암센터를 존스홉킨스병원 암센터나 MD앤더슨암센터 못지않은 세계 최고의 암센터로 만들어 전 세계 모든 환자들이 오고 싶어하도록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