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daily/한 국 인

미술가 이용백

나 그 네 2009. 1. 22. 12:46

 

미술가 이용백

 



 

“제 이름은 한자로 떳떳할 용(庸)에, 흰 백(白)을 써요. 진짜 끝내주게 지었어요. 아버지가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을 때 국어 선생님과 상의해서 지으셨대요. 팔자도 세고 해서, 되려면 되고 말려면 말아라, 해서 흰 백자를 쓰셨대요. 쉬운 말로 풀면 이런 뜻이죠, 잘났어, 정말.(웃음)” 날카로운 눈매, 헝클어진 머리칼, 뭉툭한 손, 새까만 낯빛. 이용백은 인터뷰 내내 말보로를 연신 피워대고 쓰디 쓴 커피를 마셨다. 가족은 물론 친척 중에서도 선생님들이 상당하다 했다. 물론 그 역시 10 년 이상 경원대 홍익대 한성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다. 그에게는 분명 교육자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나 보다.


“학생들 가르쳤을 때도 뭔가 끌어낼 수 있는 아이들을 좋아했어요. 저 역시 제 속의 잠재력에 주목하죠.” 그는 1990년대 초에 독일에 유학 가서 익숙했던 유화를 버리고 낯선 영상 매체를 다루기 시작했다. “잠재력을 끌어내봤으면 하는 그런 이유에서였을 거예요. 그게 더 재미있었으니까.”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80년대 후반이었다. 이용백은 리버럴하다는 예술가 집단에 소속돼 있었지만 독창적인 생각의 나래를 펼치기엔 현실의 제약이 많았다. “참아라, 절제해라”는 소리를 너무도 많이 들었다. “뭘 해보지도 않았는데 참으라니, 답답할 수밖에요.(웃음)” 지금 이용백은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신한다. 일반인들은 미술가에게 현실의 굴레를 깨는 일종의 통쾌함을 원한다는 걸, 또한 예술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그는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작가다. 그의 아이디어는 대부분 일상에서 우연히 튀어나온 게 많다. 그가 늘 탐색하고 있다는 뜻이다. 후배와 소주잔을 기울이던 어느 날이었다. “아, 내일 예비군 가야 하는데, 귀찮아.” 후배의 푸념에 이용백의 대답은 돌연했다. “군복은 모두 꽃무늬로 만들어야 해.” 금새 무슨 뜻인지 눈치 챈 후배는 “좋은 아이디어”라며 손바닥을 쳤다. 이용백의 대표작 <엔젤 솔저(Angel Solider)>가 탄생하게 된 순간이었다.

 


작품은 이러하다. 영상물 안으로 화려한 조화(造花)들이 가득하고 새소리가 아름답다. 이건 단지 꽃을 담은 영상물일까? 그렇게 생각할 즈음, 바스락, 움직임이 느껴지고 새 소리도 멈춘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꽃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이 꽃으로 뒤덮인 총을 들고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군복이란 야전 환경에 맞춰 만드는 게 아닌가. 그런데 꽃무늬 군복이라? 관객들은 잠시 생각한다. 온 세상이 꽃이라면 군복 역시 꽃무늬가 돼야 하지 않을까? 그런 작가의 행복한 상상이 실현된 것이구나. 이용백은 이 작품에 천사를 집어 넣었다. 이승과 저승 사이를 오가는 존재, 전쟁과 평화 사이를 오가는 존재다. 거기서, 총구와 총구가 마주보고 있는 분단 현실이 떠올랐다면, 과민한 걸까?

 

“<엔젤 솔저>는 정치적으로 해석이 많이 되었어요. 해외에서도 꽃과 군인이라는 테마가 쉽게 이해되었던 것 같아요. <엔젤 솔저>를 주제로 퍼포먼스도 하고, 설치물도 만들고, 사진 작업까지 했는데 아프리카 빼고는 전 세계를 다 돌았어요.”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이 주제와 관련해서 다른 아이디어가 있다. “국군의 날 행사에 군인들이 멋지게 가두행진을 하잖아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한 100명 정도가 총 대신 꽃다발을 들고 꽃 무늬 군복을 입고 가두 행진하면 멋있을 것 같아요. 꼭 해보고 싶어요.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아요?”

 

 

 

미술계에는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같은 예술 축제가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광주 비엔날레, 부산 비엔날레를 비롯해서 난징 트리엔날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처럼 세계 곳곳에서 열린다. 지난해 이용백은 부산 비엔날레와 난징 트리엔날레에 <피에타>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가 무릎에 놓인 예수의 시신을 비감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조각과 회화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같은 작가들이 <피에타>를 만들었다. 이용백의 <피에타>는 형태를 보면 사이보그다. 게다가 조형 작업 중에 예수와 성모가 하나의 형태에서 나왔다는 게 인상적이다.

 

“조각을 하면 처음에 흙으로 소조를 한 다음에 거푸집을 뜨죠. 이걸 네가티브 폼이라고 하는데. 이 안의 흙을 거둬내고 다시 포지티브 폼을 떠요. 또 다른 거푸집이죠. 그런 뒤에 이 거푸집을 버리면 그 안에 든 것이 완성본이 되는 겁니다. <피에타>는 완성본이 예수로, 거푸집이 성모 마리아로 된 경우예요.” 즉, 버려지는 거푸집도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결국 이용백의 <피에타>는 나의 시신을 안고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섬뜩한 시나리오다. ‘사이보그 피에타’에게서는 슬픈 표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주목하고 싶다.

 


미술계에도 반짝 스타들이 많다. 홈런 한번 친 뒤엔 헛스윙만 하다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작품성의 높낮이가 춤 추듯 출렁거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용백은 꾸준하다. 그래서 그는 튼튼하다. 지난 2007년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은 이를 보여준 좋은 본보기다. 그는 지름 2미터에 달하는 <플라스틱 아이>와 <루어>라는 대형 회화 작품을 비롯해 <피에타> <엔젤 솔저Ⅱ> <뉴폴더-드래그> 등 30여 점을 선보였다. “<플라스틱 아이> 페인팅 작업은 RGB 컬러인 레드 그린 블루 그리고 블랙 화이트로 제작했어요. 한 남자가 여자의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눈동자를 보고 반했는데, 사실은 그 눈의 실체가 컬러 렌즈였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죠. 단순해 보이지만 현대인들의 단면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사람들이, 내부는 볼 생각도 않고, 화려한 외형만 주목하잖아요.”

 

그의 작품 <루어(Lure)> 역시 같은 맥락이다. 루어란 원래 큰 물고기 잡는, 작은 물고기처럼 생긴 미끼다. 그런데 그가 만든 <루어>는 실제 물고기보다 훨씬 화려하고 그럴 듯하다. 그가 말했다. “참 재미 있어요. 모조품들이 원본보다 화려하고 더 사실적이에요. 뭐가 진실인지 가늠하기 힘들죠. 인생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가면서 이용백은 그와 익숙한 붓과 캔버스를 떠나 보냈다. 대신 친숙하지 않은 매체를 연구했다. 몸에 익으면 금방 싫증을 내는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그 특유의 실험 성향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난해 내놓은 유화 작품들은 거의 20여 년 만에 그가 회화로 귀환한 것을 보여준다 하겠다.

 

 

 

 

그에게는 사이버 세계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작품도 있다. 제목은 <뉴 폴더-드래그>. 이용백은 현실을 모방한 컴퓨터 인터페이스가 현실에 다시 구현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상상을 블랙 코메디처럼 보여준다. 전시장 풍경을 스케치해보면 이렇다. 모니터에서라면 쉽게 볼 수 있는 ‘노란 색 폴더’가 커다란 조각물로 등장한다. 그 아래로는 이동 가능하다는 뜻의 통나무가 바퀴를 대체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커다란 폴더’ 옆에 실제 상황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된다. 노란색 폴더를 낑낑대며 끌고 있는 어린 아이들과 노새가 화면 속에 나타난다.

 

“인터넷으로 손쉽게 이동시킬 수 있는 정보가 현실화되었을 때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표현하고 싶었어요. 사이버 세계에선 갖가지 정보를 드래그 한번으로 쉽게 옮길 수 있지만 실제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는, 그 간극을 말해보고 싶었다 할까요.” 이용백은 베이징 빈민촌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섭외해서 촬영했다. “평소 옷차림으로 오라고 했는데, 촬영한다 하니 너나 없이 새 옷을 입고 왔어요.(웃음)” 그는 또 다른 아이디어를 말하면서 차분한 낯빛이 됐다. “일본에서 매년 신에게 제사 지내는 축제가 있잖아요. 그런 축제 때 이 작품을 ‘드래그’시켜 볼까 생각 중이에요. 캄보디아에서 스님들이 폴더를 끄는 퍼포먼스도 해볼까, 생각하고 있고.”


 

그 같은 <뉴 폴더-드래그> 프로젝트는 컴퓨터 문명의 혜택 바깥에 있는 제3세계의 소외, 자본에 대한 소외, 현대성에 대한 소외를 지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이런 의도를 위해 촬영했던 베이징 빈민촌은 철거돼버렸다.

그는 그렇게 철거된 마을 이야기를 하다가 지난해 중국에서 시행한 ‘컬처 월(Culture Wall)’이라는 국가사업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베이징 올림픽 개막 즈음에 중국에 머물렀다고 했다. “올림픽 한다고 벽을 세우는 거예요. 가난한 사람들 사는 동네를 다 가리는 거죠. 그걸 중국에서는 ‘컬처 월’이라고 불러요. 황당한 거죠.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올림픽 할 때, 김포공항 옆의 판잣집을 둑이나 간판으로 가렸어요. 미관상 아름답지 않으면, 벽을 세워 숨기는 거죠. 일본에 사는 친구한테 물었더니, 도쿄 올림픽 때도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동북 아시아가 갖는 이상한 컴플렉스가 있는 거예요. 보여주기 싫으면 없애버리는 거. 그래서 벽을 치다 치다 결국에는 자기가 갇혀버리고 마는 식의 작업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일들에도 작가의 예민한 감각이 가 닿는다. 그래서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 안에는 시대 정신, 통쾌한 위트, 풍자가 녹아 있다. 

 

 

 


그는 서울 합정동에 뒀던 작업실을 최근 김포로 옮겼다. 그를 찾아간 날, 날씨는 매서웠고 200여 평이나 되는 새 작업실은 채 정리가 안 돼 을씨년스러웠다. 그의 작업 이력을 한 눈에 들여다 볼 기회를 잃은 것 같아 아쉬웠다. 갑자기 그의 참신한 생각들이 이런 휑뎅그렁한 곳에서 조형미를 갖출 것이란 사실이 놀라워졌다.

“예술가 하면 자꾸 (제한된) 형태나 이미지가 떠오르잖아요. 나는 그런 예술 안 좋아해요.” 정교한 시나리오에 세련된 연출법으로 언제나 단단한 작품성을 보여주는 이용백. 그의 두뇌 속은 톱니바퀴처럼 움직인다. 그의 의지는 변형과 역설이라는 특유의 전략으로 시대와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한다. 그의 아이디어는 이 전략 속에서 빛을 발한다. “제 작업을 오목이나 바둑에 비교하자면, 저는 (판이 큰) 바둑을 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전체를 가늠하긴 어려울 거예요.” 모든 경기는 끝나봐야 안다. 이용백의 대마(大馬)‘가 얼마나 클 것인지도. 이용백은 지금 김포의 그 너른 작업실에서 자기 판을 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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