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daily/한 국 인

대장암 수술의 권위 유창식교소

나 그 네 2009. 1. 28. 12:34

의사 유창식

 



 

그는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낭만적인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동아리를 소개하러 온 ‘몸짱 선배들’이 멋있어 보여 겁도 없이 ‘서울대 스키반’에 들어갔다. 서울대 스키반은 ‘빡센 군기’로 유명한 동아리. 겨울에는 2개월 합숙훈련을 받으며 눈 속에서 온갖 얼차려를 받아야만 했다. 스키반은 ‘휴업 상태’인 여름에는 의대의 축구동아리와 축구, 농구동아리와 농구 게임을 해서 제압할 정도로 ‘강한 동아리’였다. 유 교수의 집에는 동계체전 메달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유 교수는 또 오케스트라가 멋있어 보여 그때까지 한 번도 연주해 본 적도 없는 오보에를 사 들고 오케스트라 반을 찾아갔다. 그는 의대 학생 때 40세 정도까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40대부터는 음악과 레포츠 등을 즐기며 여유롭게 살려는 꿈을 꿨다. 그러나 그 꿈은 그야말로 백일몽(白日夢)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하루 잠을 5~6시간 이상 자면 ‘큰 일’ 날 정도로 바쁜 생활을 이어왔다. 그는 한 해에 600 여 명을 수술하며 한 해에 10~15편의 논문을 쓴다. 2006년부터는 서울아산병원 홍보실장을 맡아 늘 궁둥이에 바람이 휘날리도록 뛰어다닌다. 그는 “20년 정도가 지나면 여유가 생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 교수의 삶이 이토록 바쁘게 된 데는 세 가지의 계기가 있었다. 그는 의대 본과 4학년 때 부산으로 수학여행 가서 밤에 친구인 방문석 현 서울대 재활의학과 교수와 놀러 나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운전기사는 즉사하고 두 의대생은 큰 수술을 받았다. 그는 당시 수술을 하는 의사가 되고자 마음먹었으며 공중보건의 시절 외과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서울대병원에서 외과 전공의를 마치고 스승인 오승근 교수의 제안에 따라 서울아산병원에서 전임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서울아산병원은 당시 국내 병원 가운데 처음으로 외과 수술 분야를 세분화한 선진국형 시스템을 도입했다”며 “이 병원을 선택한 게 내 삶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대병원에는 김진국, 김수태, 최국진 등 ‘전설적 칼잡이’들이 있었지만, 한 분야만 집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울아산병원에서는 당시 박건춘 진료부원장이 외과를 간, 위, 대장 등 세부전공으로 나눠 의사들이 한 분야에만 전담케 했다. 유 교수는 위를 전공하려고 했는데 김진천 교수에게 ‘찍혀서’ 대장을 맡게 됐다.

 

 

 

“10 여 년 동안 대장 질환이 급증했습니다. 대장암은 여러 암 중 가장 가파르게 늘어 발병률, 사망률 2위의 암으로 떠올랐습니다. 1년에 1명 보기가 힘들었던 염증성 장질환으로 병원에 오는 사람은 하루 2, 3명으로 늘었습니다.”


유 교수의 삶을 바꾼 세 번 째 순간은 1996년 미국 미네소타에서 열린 한 심포지엄에 참가했을 때다. 유 교수는 당시 1년 동안 한 염증성 장질환 환자의 치료법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는 커피타임에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의 교수에게 그 환자의 치료법에 대해 자문을 구했는데 그 의사는 망설이지도 않고 ‘정답’을 내놓았다. 유 교수가 귀국 후 그 치료법에 따랐더니 환자의 상태는 드라마틱하게 호전됐다.


 

“당장 병원을 졸라 미국행 짐을 쌌습니다. 염증성 장질환 분야에서 최고의 병원이었던 미국 메이요클리닉에서 다양한 염증성 장질환을 치료했습니다. 케이스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밤잠을 자지 않고 시간을 쪼개 공부했습니다. 귀국 후 국내에서 환자가 급증했지만 대부분 미국에서 공부한 범주에 들었습니다. 그래도 환자가 올 때마다 초심자의 기분으로 최선을 다해 진료했습니다. 지금은 어떤 유형의 환자가 와도 겁이 나지 않습니다.”
유 교수는 아직도 많은 대장암 환자가 너무 늦게 암을 발견해 소중한 삶을 잃는 현실이 안타깝다. 염증성 장질환에 걸렸지만 자신의 병을 정확히 모르고 학교나 직장을 포기하고 비만에 생리불순, 불임 때문에 괴로움을 겪다가 뒤늦게 병원에 오는 환자를 보는 것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온 국민이 ‘군자삼락(君子三樂)’을 실천해 희생자가 줄기를 꿈꾼다. “삼락에는 쾌식, 쾌면과 함께 쾌변이 포함돼 있습니다. 30~40대에는 변 습관을 꼭 챙기세요. 굵기, 묽기와 피가 섞여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변 습관의 변화는 인체의 경보입니다. 옛날 궁궐에서 시의가 임금의 변을 꼭 챙겨본 것은 지금 시각으로 봐도 옳습니다.”

 

 

 

유 교수는 온 국민이 변을 잘 챙겨 대장질환으로 인한 희생자가 뚝 떨어지는 그날까지 빠듯한 시간과 싸우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는 현재 전국의 의사들로부터 염증성 장질환자 수술 의뢰를 받아 국내 수술 전체의 절반 정도를 맡는다. 또 서울아산병원 대장암 팀의 수장으로 한 해 1300여명의 대장암 환자 치료를 총괄한다. 그는 젊었을 때 꿈처럼 레저나 음악에 빠져 살지는 못하지만, 수술을 예술처럼 하고 있다는 위안으로 대신 한다. 원래 그리스어에는 예술과 의술은 같은 단어였다. 의사 히포크라테스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말했을 때 예술은 곧 의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유 교수는 자신이 곧 예술가 유창식이라고 되뇌며 오늘도 수술실로 향한다.

 


대장암은 발병률, 사망률 모두 급증하는 암이다. 현재 발병률은 위암에 이어, 사망률은 폐암에 이어 2위이지만 조만간 수위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장암은 대체로 기름진 식사와 비례하고 배변양과 반비례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대변이 많으면 암 유발 물질의 농도가 희석되고 발암물질이 대장 내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빨리 배출되기 때문이다.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 대변량이 많아지는 데 비해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하면 배변량이 적어진다. 대장암은 충분히 예방 가능하고 일찍 발견하면 완치가 가능하다.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대장암 1기 환자의 5년 생존율이 95% 이상이지만 2기는 80%, 3기는 60%로 떨어지며 간이나 폐로 전이되면 5% 아래로 떨어진다. 조기발견이 치료의 열쇠이지만 위암의 조기 발견율이 40%에 이르는 데 비해 대장암은 10%에 불과하다.

 

소장을 통과한 음식물은 오름주름창자(상행결장), 가로주름창자(횡행결장), 내림주름창자(하행결장), 구불주름창자(S결장), 곧창자(직장)를 통해 배출되는데 서양인은 대장암 중 상행결장암이, 동양인은 S자결장암과 직장암이 많은 편이다. 대장암은 부위별로 증세가 달라 오른쪽 암은 빈혈 복통 등의 증세, 왼쪽 암은 변비 설사 혈변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증세가 없는 경우도 많다. 특히 직장암 환자 4명 중 1명은 치질이겠거니 하면서 지내다가 치료 적기(適期)를 놓치곤 한다.

 

 

대장암은 수술이 기본 치료법이며 수술 전후에 항암화학요법이나 방사선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특히 직장암의 수술 전후 방사선 치료는 생존율을 높이고 재발률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항문 보존율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수술법은 암이 발생한 부위와 크기 등에 따라 다르다. 대장암은 대부분 용종을 통해서 시작하는데 대장내시경 검사에서 용종을 찾았을 경우 이를 레이저로 태우거나 전기로 절제해서 없애는 방법으로 ‘2차적 예방’이 가능하다. 직장암의 경우 조기에 발견하면 항문을 보존할 수 있지만 때를 놓치면 인공 항문을 달아야 한다. 요즘에는 복강경 수술의 범위가 늘어나고 있으며 여러 병원에서 로봇수술을 도입하고 있다. 항암제는 아바스틴, 어비툭스 등 정상세포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암세포만 공략하는 표적항암제가 잇따라 선보이고 있어 환자의 치료 및 생존연장에 도움을 주고 있다.

 

 

대장암의 5% 정도는 유전적 원인 때문에 생기고 95%는 식생활 흡연 등 후천적 요인으로 발생한다. 일반인은 50세 이후 5년에 한 번씩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이 좋고 40세 이후 혈변이 나오거나 배변 습관이 갑자기 변했다면 곧바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


대장암의 1%는 ‘가족성 용종 증후군’ 때문에 생기는데 이는 유전적 요인으로 20대 초반에 사마귀 또는 버섯 모양의 혹(용종)이 수 백개에서 수 천개까지 생겼다가 10∼20년 뒤에 암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5%는 ‘가족성 비용종성 대장암’인데 이는 유전적 이유로 50대 이전에 주로 상행결장에 암이 생긴다. 부모 중 한 사람이라도 두 가지 중 하나의 환자였다면 자녀들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가족성 용종 증후군 가계에 속하면 15세 이후 매년 검사를 받아야 하고 가족성 비용종성 대장암 가계라면 30세 이후에 1, 2년에 한 번 씩 검사 받도록 한다. 이밖에 대장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거나 용종을 잘라낸 적이 있는 경우, 염증성 대장염 환자도 매년 한 번 씩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평소 우유, 신선한 채소, 과일을 충분히 먹고 패스트푸드, 인스턴트식, 적색고기나 가공육, 조미료나 소금이 많이 든 음식, 훈제식품, 기름기가 많은 음식, 정제한 곡물을 덜 먹으면 대장암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음주도 대장암의 원인이 되며 비타민B의 일종인 엽산과 마늘, 육류, 계란, 유제품 등에 풍부한 메티오닌이 부족하면 발병률이 3배까지 높아진다. 따라서 술을 절제해야 하고, 피치 못할 술자리에서는 안주를 충분히 먹는 것이 좋다. 운동은 대장암 발병을 뚝 떨어뜨려주므로 매주 3회 이상 땀을 흘릴 정도로 운동하고 금연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스피린과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 DFMO, UDCA(상품명 우루사), 혈관신생억제제 등이 대장암 발병을 줄이는지 연구 중이다. 영양보조제로는 칼슘, 엽산, 메티오닌, 셀레늄이 대장암 예방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여 연구 중이다. 따라서 평소 영양 상태에 자신이 없다면 의사와 상의해 이들 성분이 든 영양제와 아스피린, 우루사 등을 복용하는 것도 괜찮다.

 

 

Q&A 유창식 교수에게 물어보다

  • 1
    내 인생에 자양분이 된 숨겨진 습관(secret habit)은?
    시간을 알뜰하게 쓰기 위해 노력한다. 자기 전에 다음날 스케줄을 짜고 아무리 많이 자도 5~6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휴일에 시간이 남는다고 낮잠을 자는 법도 없다. 젊었을 때는 데이트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시간을 아꼈다. 요즘은 남는 시간에 주로 운동을 한다. 최근에는 병원 보직까지 맡아 시간을 아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 2
    내게 힘을 주는 경구나 명언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중, 고교 때 입시공부를 하면서 마음에 담아뒀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의미가 새롭다. 시기별로 새로운 한계를 느끼게 된다.
  • 3
    슬럼프에 빠지면 어떻게 극복하는지?
    수술한 환자가 잘못 됐다든지, 논문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든지, 인간관계에서 오해가 생겼다든지 등의 일이 생기면 맡은 일을 더욱 더 철저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하루 1번 돌던 회진을 2번 돌고 논문을 더욱 더 철저하게 살펴본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하는데 운동은 담대한 에너지를 준다.
  • 4
    스무 살 때와 지금 내가 달라진 점은?
    20대에는 음악, 스키 등의 동아리 활동과 연애 등 인간적인 것들을 찾아서 했다. 그때에는 40이 되면 무엇인가를 이루고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을 하며 풍요롭고 낭만적으로 살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것을 찾기에는 갈 길이 멀다. 다만 20대에는 보기조차 힘들었던 희소 대장질환에 걸린 환자가 와도 치료에 자신이 있을 정도로 관록이 붙었다.
  • 5
    내가 겪은 가장 아픈 실수와 교훈을 들려준다면?
    본과 4학년 졸업여행 때 부산에서 밤에 친구와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운전기사가 즉사하고 몇 번 수술을 받았다. 환자로서의 고통과 죽음을 직접 겪으면서 환자의 처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 6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외과의사로 우리 병원의 이승규 교수를 존경한다. 온 삶을 간이식에 바쳤고 환갑 나이가 돼서도 밤새워 수술을 한다. 그 열정을 본받고 싶다. 일반인 중에서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존경한다. 고인은 고용한 의사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표시했고 자녀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다. 아산재단을 설립한 것도 두메, 낙도에서 의료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이들 중에 고치기 어려운 환자가 나오자 서울중앙병원을 짓게 했다. 병원 이름에 자신의 호 ‘아산’이나 ‘현대’의 이름을 못쓰게 한 것에서도 그의 본마음을 알 수 있다.
  • 7
    나를 감동시킨 사람이 있다면?
    말기암으로 투병하던 40대 교수다. 그 교수는 현대음악에서 일가를 이뤘지만 암의 희생양이 됐다. 하지만 고통스런 투병의 와중에서도 한 번도 불평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또 크론병으로 자살까지 생각했다가 수술 뒤 회복돼 어엿한 사회인으로 생활화며 환우회 활동을 하는 20대 환자도 잊기 어려울 것이다.
  • 8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말기암으로 투병하던 40대 교수다. 그 교수는 현대음악에서 일가를 이뤘지만 암의 희생양이 됐다. 하지만 고통스런 투병의 와중에서도 한 번도 불평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또 크론병으로 자살까지 생각했다가 수술 뒤 회복돼 어엿한 사회인으로 생활화며 환우회 활동을 하는 20대 환자도 잊기 어려울 것이다.
  • 9
    의사를 선택한 계기는?
    어린 시절 유난히 병치레가 많았던 동생과 이를 안타깝게 여겼던 부모님을 보면서 의사가 되고 싶었다.
  • 10
    외과에서 이것만은 갖춰야 한다는 자질이 있다면?
    근면, 성실해야 한다. 손재주보다도 어떤 일이 있어도 환자를 지켜야 하는 책임감이 우선이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고 남들보다 늦게 퇴근하면서 환자를 조금이라도 더 보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 11
    외과 의사를 정말 잘 선택했구나 싶었던 때는?
    수술로 병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환자를 볼 때마다 힘이 난다.
  • 12
    같이 일을 하며 내게 믿음을 주는 사람(선후배/동료)은?
    외과진료는 의사 한 사람이 모두 하는 것이 아니라 팀워크로 이뤄진다. 나를 도와주며 함께 일하는 의사, 간호사, 사무직원 한 사람 한 사람 다 소중하다.
  • 13
    사람들을 어렵게 설득해야 할 때 내가 쓰는 방식이 있다면?
    상대방의 입장을 2~3번 고려한 뒤 내 주장을 한다.
  • 14
    다시 스무 살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은?
    영화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 우리 집은 아버지가 영화 감독, 어머니가 배우였고 지금은 동생이 영화감독을 하므로 ‘영화 가족’인 셈이다. 내게도 그런 ‘끼’가 있는 듯하다.
  • 15
    앞으로 꼭 해내고 싶은 희망이 있다면?
    우리 과와 병원이 명실상부하게 세계 최고의 진료 시스템을 갖춘 초일류 클리닉이 되도록 성장시키고 싶다. 지금은 아시아에서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메이요클리닉이나 존스홉킨스병원에 비하면 개선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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