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daily/한 국 인

미술가 신문섭

나 그 네 2009. 1. 29. 18:02

 

미술가 심문섭

 

 



 

심문섭의 작품은 바다의 배를 닮았다. 물 위에 떠 있는 심문섭의 조각을 보면 알 수 있다. 작품의 모양새가 바다를 헤쳐가기에 용이한 유선형, 배나 돛을 떠오르게 하는 것들이 많다. 심문섭의 '바다 체험' 은 조각의 형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심문섭은 한국 조각의 세계화를 이끌어온 리더다. 파리, 상파울로, 시드니, 카뉴, 도쿄, 베니스를 비롯한 국제 비엔날레에 연이어 참가했으며, 각종 국제 조각 심포지엄(야외 조각전)에도 한국 대표로 출품해왔다. 2007년 프랑스 문화성의 초청을 받아 파리 팔레 루아얄에서 개인전을 갖는 등 나라 바깥의 이름 난 공간에서 여러 차례 초대를 받았다. 미술가가 국제적으로 지명도를 얻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뛰어난 예술성, 정보 교류의 순발력, 끈끈한 인맥과 네트워크, 강한 추진력이다. 심문섭은 이 요건을 모두 갖췄다. "1973년 파리 비엔날레에 참가한 게 첫 외국 나들이였어요. 그때 외국 물 안 먹었으면 일찌감치 촌놈이 됐을 거예요. 오는 길에는 유럽 6개국을 거쳐 인도를 여행했지요. 이때부터 역마살이 발동한 거지 뭐."


그를 '미술계의 홍길동'이라 할 수 있을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행동 반경이 매우 넓다. 작업실도 서울 평창동, 경기도 덕소, 경남 통영, 프랑스 파리, 중국 베이징 등지에 있다. 또한 김창열 이우환 처럼 해외에 사는 작가들은 물론이고 외국 미술인들과도 긴밀한 교류를 갖고 있다. 그는 유랑 기질이 단단히 배어 있고, 낯선 사람을 사귈 때의 긴장감 같은 것을 즐긴다. 

 

 

 


심문섭은 반세기 동안 작업해오며 시종일관 전통 조각에 반기를 들었다. 늘 혁신적인 작품을 내놓았다. 파리비엔날레에 참가했던 1970년대부터 종이, 흙, 철판, 모래 등의 재료를 날것으로 등장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또 그의 작품은 서양 조각과는 달리 좌대가 아예 없다. 바닥에 누워 있거나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다. 마치 땅에 깊이 뿌리박고 있거나 바다에 떠 있는 느낌을 준다.


심문섭 조각의 트레이드마크라면 1980~90년대에 집중적으로 제작한 <목신(木神)> 시리즈다. <목신>은 얼핏 보면 옛날 실생활에서 사용하던 가구나 생활 집기 같은 모양이다. 폐선의 어느 한 부분 같기도 하고 납작한 트렁크, 요리 접시, 장난감 배, 혹은 농기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심문섭은 이 단순한 형태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재료를 날것으로 제시하거나, 재료에 최소한의 조각 어법을 덧붙이려고 해요. 물질의 형태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지요. 물질 자체의 세계와 그 물질이 조각으로 형성되는 세계. 두 세계 사이에서 놀이를 즐기는 거죠."

 

심문섭의 조각은 작품이라기엔 너무나 자연에 가깝고, 또 그냥 자연물로 보기에는 너무나 조형적이다. 완성도 높은 작품 같다가도 미완의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목신에서는 나뭇결이나 옹이 같은 나무 자체의 본성을 살려, 재료 스스로가 살아온 '시간의 숨결'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나무의 본성을 나는 '목신'이라 불러요. 나무 속에 '정신'이 숨쉰다는 뜻이지요. 그 정신은 한국 민족의 바닥 깊숙이 흐르는 나무에 대한 신앙, 그러니까 샤머니즘을 현대에 퍼 올린 겁니다. 어느 일본 평론가는 벼농사를 짓는 민족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목공예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고 하더군요."

 

 

 

2000년대에 들어와 심문섭은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에서 잇달아 개인전을 열고 새로운 작품 변신을 시도한다. 2007년 파리의 팔레 루아얄 공원에서 야외 조각전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2008년 11월 심문섭은 갤러리현대와 학고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12년 만에 서울에서 여는 이 발표전은 그 동안 해외 전시로 분주했던 그의 작품 성과와 변모를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심문섭 작품에서 몇 가지 새로운 특징이 드러났다.

 

 

 

심문섭은 실생활에 쓰이는 가구를 작품 재료로 재활용했다. <목신> 시리즈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다. 베이징에 머물며 재개발로 허문 집의 대들보와 기둥을 재료로 사용했다. 한약방의 약장처럼 구조물을 만들고 검은 옻칠을 입혀 신비로운 성채처럼 설치했다. 그의 말이다. "똑 같은 크기의 서랍이 많이 달려 있는 작품이에요. 인간이 쌓은 구축물의 역사를 조망해 봤어요. 획일적인 현대의 도시 풍경 같은 걸.” 또 오래된 중국산 탁자에 반짝이는 스테인리스로 숯불구이판 같은 걸 만들었다. 그 판에 구멍을 뚫어 투명한 비닐관을 세웠다. "비닐관이 일어섰다 넘어섰다 반복하도록 장치를 했죠. 사실은 생명의 경외감 같은 메시지를 던지려고 했어요. 관객들은 비닐관이 큰 콘돔 같다고 재미있어 하더군요.(웃음)"


그는 또한 기존의 나무 재료에 더하여 네온이나 철망, 비닐, 대나무 등 공기와 바람이 통하는 가벼운 재료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특히 서로 성격이 대조되는 두 가지 소재가 함께 만나는 작품이 새롭게 등장한다. 배처럼 누워 있는 나무 기둥 위에 대나무가 꽂혀 있고, 신문지 뭉치와 돌을 한 덩어리로 묶은 광섬유가 빛을 내고, 커다란 바위 사이의 구멍에서는 물이 흐른다. "서로 다른 물질들이 만나 대화하는 교감의 세계를 열고 싶어요. 그래서 소재를 에워싸고 있는 공간 주변에서 일어나는 풍경을 관람객들에게 시적(詩的)으로 환기시켜주고 싶어요."

 


이제 심문섭은 하나의 작품 덩어리뿐만 아니라 작품이 놓인 공간, 그 안의 공기, 빛과 그림자, 관객들의 시선까지도 작품의 구성 요소로 끌어들인다. 필자는 외국에서 열린 심문섭의 야외 전시를 두 차례 본 적이 있다. 그의 작품은 나무와 숲, 공기와 바람과 소리, 기후와 시간, 그리고 관람객들의 움직임까지 하나가 되어 거대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자연을 작품화한 것이요, 작품을 자연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이 작품을 제압하지 않고, 작품이 자연을 제압하지 않는다. 자연과 예술이 둘 다 '스스로(自) 그러한(然)' 조화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2008년 중앙대 교수직을 정년 퇴임했다. 삶이 새로운 전기를 맞은 것이다. "국제 미술은 전쟁터예요. 느긋해 할 게 아니라, 스스로 벼랑 끝으로 내몰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게 아니니까." 그의 새로운 항해에서 심문섭은 또 다른 예술의 좌표를 붙잡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예술은 아직 원양(遠洋)의 뱃길처럼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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