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관은 어려서부터 운동 신경이 남달랐다. 순발력과 힘이 좋아 달리기, 멀리뛰기, 오래 매달리기 등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씨름을 하면 2명의 친구를 한 손으로 상대해 이길 정도였다. 그러나 운동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2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전병관은 집안을 이끌어 가야 했다. 아버지도 자신이 못다 이룬 학사의 꿈을 아들이 이뤄주길 원했다. 1982년 진안 마령중학교에 입학한 전병관은 의사를 꿈꾸며 학업에 매진했다. 성적이 오르자 조금씩 공부에 재미도 붙었다.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전병관의 진로는 바뀌게 된다. 그 해 5월 전교생을 대상으로 체력장이 열렸다. 지는 게 싫었던 전병관은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해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런 전병관에게 돌아온 건 높은 점수가 아니라 역도부 가입이었다. 학업 성적을 매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교에 새로 생긴 역도부 선수를 뽑기 위해 열린 체력장이었다. 전병관은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역도부에 들어갔다. 전병관은 “운동보다 공부가 좋았다. 훈련이 너무 힘들었다. 역도부를 탈퇴하기 위해 일부러 엄살을 피우기도 했다. 그런데 정인영 선생님께서 이를 알아채시고 열심히 하면 운동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다며 나를 달랬다. 어린 마음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업과 운동을 모두 잘 하기엔 힘이 부쳤다. 힘겨운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에 지쳐 잠들기 바빴다. 성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전병관의 1학기 기말고사 성적은 25등이었다. 10등 안에 들던 아들이 갑자기 성적이 나빠진 이유가 역도 때문이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학교로 찾아가 당장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전병관의 남다른 재능을 눈여겨본 정인영 선생은 “1년만 지켜보자”며 어머니를 설득했다. 판단은 옳았다. 전병관은 1982년 12월 제2회 소년역도선수권대회에서 인상 55kg, 용상 72.5kg, 합계 127.5kg으로 1위에 올랐다. 역도를 시작한 지 7개월 만이었다. 전병관은 그제야 자신이 역도에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역도 선수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