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daily/한 국 인

심장을 살리는 이영탁 교수

나 그 네 2009. 2. 10. 13:01

 

의사 이영탁

 

 


 

 

이 교수는 사명감이 자연스럽게 체화된 의사다. ‘주말 부부’인데도, 주말 아침에도 일단 병원으로 출근한다. 부인은 미국 줄리아드 음대 출신의 중견 피아니스트인 박선혜 부산 동의대 교수. 미국 코널 대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두 딸이 귀국해도 어김이 없다. 휴일 저녁에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한이 있어도 아침에는 일단 병원으로 향한다. 이 교수는 “나이도 들었는데 왜 휴일에 회진을 도느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휴일이라고 환자에게 위기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그는 늘 “의사의 순간이 환자에게는 영원이 된다”고 되새기고 후배 의사들에게도 강조한다. 후배가 휴일에 회진하지 않고 차트로만 환자를 점검했다가는 이 교수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진다.


이 교수는 충청도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의 4남3녀 중 막내였다. 초등학교 때 서울에 사는 둘째 누나의 집으로 ‘유학’ 가서 동갑내기 조카와 함께 공부해서 서울대 의대에 들어갔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투에는 시골사람의 소탈함과 여유가 넘친다. “제가 흉부외과를 지원할 때에는 마침 이 분야가 꽃을 피우기 시작할 무렵입니다. 1983년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방문한 낸시 여사가 심장병 환자 두 명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서 수술한 데 이어 이순자 여사가 ‘새세대심장재단(현 한국심장재단)’을 만들어 심장병 어린이들을 치료해주면서 이 분야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전에는 심장에 병이 있으면 그냥 집에서 숨을 거둘 수밖에 없었죠.”


 

 

 

그는 1989년 국내 유일의 심장병 전문병원인 부천세종병원으로 가서 12년 동안 심장동맥질환 수술 분야에서 ‘칼잡이’로서 이름을 떨치다 삼성서울병원으로 스카우트됐다. 이 교수는 1996년 심장이 뛰는 상태에서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을 만들어주는 ‘무펌프 관상동맥우회술’을 국내에 도입해서 퍼뜨렸다. 이전에는 인공심폐기를 돌리면서 심장을 정지시키고 나서 수술을 했지만 수술시간이 짧아지고 염증이 줄어들게 된 것. 초기에 포크의 중간 두 날을 잘라내고 이것으로 혈관의 꿰매는 부분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켜 시행한 ‘포크 수술’은 흉부외과의 전설로 남아있다. 이 교수는 한 해 400여 명의 심장동맥 질환자를 수술하면서 90%를 무펌프 관상동맥우회술로 치료한다. 전체 수술사망률이 0.5%에 불과할 정도로 치료성적이 뛰어나다. 이 교수는 최근 가슴을 5~6㎝만 절개하고 수술하는 ‘최소침습적 우회술’을 도입해서 100여 명의 환자에게 적용하고 있다.

 

이 병원 심장내과 박정의 교수는 “이 교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의 해결책을 찾는 의사”라며 “그래서인지 도무지 살 수 없을 것 같은 환자가 살아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곤 한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흉부외과 의사에게 수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수술을 끝내고 환자의 경과를 지켜보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회진할 때 환자의 손을 꼭 잡고 얘기를 한다. “환자의 손을 잡으면 건강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손이 따뜻하면 심장이 잘 뛰고 피가 잘 돌고 있다는 증거이죠. 어떤 강심장이라도 심장 수술을 받으면 위축되고 떨게 마련인데 의사의 따뜻한 손길이 환자에게 큰 위안이 되는 효과도 있고요. 환자의 얘기를 듣고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재충전하기도 합니다.” 그는 후배에게 엄할 때에는 엄하지만 일과가 끝나면 형처럼 토닥거린다. 그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후배를 키우라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체면 때문에 무게만 잡고 성공 사례만 얘기하고 못한 것은 숨기면 후배들도 똑같은 실수를 하게 되므로 자신의 모습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

 


그는 환자의 진료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후배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가르치고 여러 가지 기회를 줘야 한다고 믿는다. 이 교수는 2004년 삼성서울병원 전공의들로부터 가장 닮고 싶은 의사로 선정됐다.

 

그는 후배들과 저녁이나 술자리도 잦다. 더러 술자리가 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연말에는 좁은 집안에 병동 식구들을 모두 초청해서 파티를 갖는다. 밤늦게까지 시끌벅적하게 카드나 고스톱을 치기도 한다. 몇 년 전에는 아예 소 한 마리를 잡아 불고기파티를 해서 한 달 동안 집안 구석구석에 쇠고기 냄새가 배기도 했다. 이 교수는 의사에게는 기술 못지않게 인성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내 손재주가 특별히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의사는 그저 환자를 위하는 마음만 갖고 있으면 된다고 봅니다. 환자를 사랑하면 없던 체력도 생겨나고, 끊임없이 노력하게 됩니다. 그래서 흉부외과 의사의 자격조건은 첫째도, 둘째도 따뜻한 마음입니다.”

 

심장은 인체의 엔진이다. 주먹 크기의 근육 덩어리가 쉴 새 없이 뛰면서 온몸 구석구석에 혈액을 보낸다. 심장근육이 뛰는 데에도 산소와 영양분이 필요하다. 혈액이 공급돼야 하는 것이다. 심장에 혈액을 보내는 ‘심장동맥’은 세 개인데 심장을 뒤집었을 때 왕관처럼 보인다고 해서 관상동맥(冠狀動脈)이라고도 부른다. 이 동맥이 막히면 심장이 멎는다. 이 동맥이 서서히 좁아지거나 꽉 막히는 것이 심장동맥질환이다. 관상동맥질환, 허혈성 심장질환이라고도 부른다.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심장동맥의 내부에 피떡이 엉겨 붙어 혈관이 좁아지는 ‘협심증’과 혈관이 막혀서 심장근육이 죽는 ‘심근경색’(심장발작)이 있다. 협심증은 3∼5분간 가슴 한가운데가 짓누르거나 빠개지는 듯한 통증이 되풀이된다. 때로 팔이나 목이 아프기도 한다. 계단이나 육교를 오르거나 급히 움직일 때 아팠다가 쉬면 덜 아프며 추운 날씨나 식사 직후에 통증이 생긴다. 병이 진행되면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온다. 사람마다 통증이 다른데 고령이나 당뇨병환자는 통증을 못 느끼면서 병이 진행되고 담배를 오래 피운 사람은 새벽녘이나 아침에 통증이 온다.

 

심근경색 나타나면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는 것이 생명 좌우
심근경색은 30분 이상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더러 구역질이 나거나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졸도하기도 한다. 재빨리 병원에 옮겨야 한다. 환자가 증세를 보이면 주위에서 곧바로 119에 전화를 걸어 1, 2시간 내에 병원에 도착해 피떡을 녹이는 약을 투여 받아야 한다.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하면 사망률이 50%에 이를 만큼 치명적이므로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는 것이 생명을 좌우한다. 그러나 협심증과 심근경색도 사람에 따라서는 소화가 안 되거나 급성 위장염과 비슷한 증세로 나타나기 때문에 가슴 부위가 아프면 ‘아이쿠 어디엔가 탈이 났다’고 여기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


 

스텐트 시술은 재발률 높고, 나중에 정식 수술 못 받을 수도
병원에서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른 치료법을 쓴다. 내과에서는 약물요법과 중재시술로 치료하고 외과에서는 수술을 한다. 최근에는 사타구니를 통해 작은 그물망(스텐트)을 넣어 심장동맥을 넓히는 중재시술이 급격히 늘고 있지만 이것이 능사는 아니다. 중재시술과 수술의 비율이 미국과 유럽은 3:1, 캐나다와 싱가포르는 2:1을 넘지 않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은 10:1을 넘는다. 어떤 의사는 심장동맥 하나에 5~6개, 7개까지 스텐트를 집어넣는데 나중에 수술을 받을 수가 없게 되므로 이 같은 ‘무조건 내과시술’은 곤란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각 동맥마다 스텐트를 3개까지 넣도록 한정하고 있는데 다 이유가 있다. 스텐트 중재시술의 가장 큰 단점은 높은 재발률인데 최근 일부 병원에서는 항암제를 방출하는 스텐트를 넣어 재발률을 낮추고 있지만, 이 역시 0.7%에게서 치명적인 급성 혈전이 생기는 한계가 있다. 환자는 심장내과와 흉부외과 의사 간 협진이 잘 되는 병원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트레스 관리와 담배 끊기가 심장 보호 첫 걸음
심장동맥질환도 예방이 최선이다. 고혈압, 흡연, 고지혈증, 운동부족, 당뇨병, 비만, 스트레스 등이 위험요소. 우리나라에서는 술과 담배에 절어 사는 45세 이상의 남성에게서 흔하며 가족력도 위험인자다. 이에 해당하는 사람은 매년 1번 정도 심전도검사운동부하검사 정도는 받는 것이 좋다. 특히 고혈압 환자는 증세가 없다고 해서 약을 먹지 않으면 ‘큰일’을 당할 수 있으므로 꾸준히 혈압을 관리해야 한다.
요즘엔 30∼45세 남성에게도 심장질환이 많이 생기는데 주로 스트레스와 흡연 탓으로 추정된다. 특히 스트레스가 쌓이면 호르몬 ‘카테콜라민’이 많아져 맥박이 빨라지고 혈압이 올라가며 이 상태가 5, 6년 계속되면 혈관이 급격히 수축된다. 따라서 1주 3회 이상 땀을 흘릴 정도로 운동하고 취미와 여가활동 등으로 스트레스를 풀도록 해야 한다.

 

 

Q&A 이영탁 교수에게 물어보다

  • 1
    내 인생에 자양분이 된 숨겨진 습관은?
    수술 전이나 수술 후의 환자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눈으로 직접 환자의 얼굴을 확인한다. 이때 반드시 환자의 손을 잡아 본다. 그 이유는 위에서 밝혔다. 다른 습관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스스로를 아침형 인간으로 생각하는데, 아무리 늦게 자도 일찍 일어난다. 다음날 일어날 시간을 예상하고 자면 저절로 그 시간에 일어나서 식구들이 놀라곤 한다.
  • 2
    내게 힘을 주는 경구나 명언은?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 최신 수술기법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문헌, 학회 등 직간접 경험을 통해 머릿속에 입력해 놓아야 수술 시 응용할 수 있다. 특히 초응급 상황에서는 본능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 3
    슬럼프에 빠지면 어떻게 극복하는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초심으로 돌아간다. 수술할 때나 진료할 때 마음 속으로 흉부외과 초년 시절의 마음가짐을 되새긴다.
  • 4
    스무 살 때와 지금 내가 달라진 점은?
    나이가 들면서 일에 대한 집중력과 신중함이 생기는 것 같다.
  • 5
    내가 겪은 가장 아픈 실수와 교훈을 들려준다면?
    심장 수술의 특징은 매 순간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환자가 심장기능이 저하되어 있으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환자를 치료하면서 상태가 나빠지게 되면 다른 방법을 선택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6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서울대의대 흉부외과 스승님들이다. 이영균, 서경필, 김종환, 노준량, 김용진, 안혁 교수 등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다.
  • 7
    나를 감동시킨 사람이 있다면?
    환자들이다. 수술 후 고생하고 있는 환자가 회진 때 힘드신 중에도 내 손을 꼭 잡고 수고한다고 말씀하시면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 8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10년 전 10세 남자아이가 왔는데, 심장의 좌우가 뒤집혀 있었다. 아이가 여러 번 수술을 받았기에 수술이 꽤 어려웠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아이는 체력이 다해 1년 뒤에 숨졌다. 지금껏 해본 수술 중에 가장 힘들었기에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 9
    나의 라이벌은?
    같은 일을 하는 모든 동료다. 모든 분들에게서 하나 하나 따져 보면 무엇인가 배울 점이 있다.
  • 10
    흉부외과에서 이것만은 갖춰야 한다는 자질이 있다면?
    흉부외과를 하려면 모든 일에서 환자를 항상 0 순위에 두고 일을 해야 한다.
  • 11
    흉부외과의사를 정말 잘 선택했구나 싶었던 때는?
    환자의 심장, 폐 기능이 급격히 저하돼 생명유지가 어려울 때 피에 산소를 공급하는 응급순환장치(EBS)를 도입했는데, 이것이 전국의 병원에서 널리 사용되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
  • 12
    같이 일을 하며 내게 믿음을 주는 사람(선후배/동료)은?
    같은 병원에 있는 박표원, 심영목 선배가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 신중하고 빈틈이 없구나, 감탄할 때가 많다.
  • 13
    사람들을 어렵게 설득해야 할 때 내가 쓰는 방식이 있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내 가족,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고 말을 한다.
  • 14
    다시 스무 살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은?
    역사 책을 많이 읽을 것이다. 대화하면서 역사를 인용하는 분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다.
  • 15
    앞으로 꼭 해내고 싶은 희망이 있다면?
    “인공심장 이식”이다. 북미,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있어 발전이 많이 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환자가 1억5000만 원이나 되는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보편화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진정한 의료 선진국이 되려면 이 분야도 반드시 넘어야 할 숙제다. 비용 면만 해결되면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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