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를 준비하고 있으니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셈.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의 핵심적인 부분은 바뀌지 않았다. “1회부터 지금까지, 아시아의 새로운 영화와 감독을 발굴하고 세계화시킨다는 목표는 변함없어요. 바뀌는 건 세부적인 프로젝트죠.” 국제영화제들의 무한 경쟁 시대. 부산국제영화제 전엔 도쿄영화제와 홍콩영화제가 아시아에서 투 톱 체제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부산이 1회부터 성공을 거두면서 도쿄와 홍콩이 밀리기 시작했다. 이후 두 영화제가 부산국제영화제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고, 한편으론 부산국제영화제도 다른 영화제의 좋은 선례들을 가져와 수용했다. “부산국제영화제도 프로젝트를 개발할 때 외국의 영화제를 벤치마킹하죠. PPP(부산프로모션플랜)는 로테르담영화제의 시네마트를 보고 우리 식의 프로젝트 마켓을 연 것이고, ‘아시안 필름 아카데미’는 베를린영화제의 ‘탤런트 캠퍼스’와 선댄스영화제의 ‘프로듀서스 랩’을 수용한 것이에요.” 제작 지원 펀드를 만들고 교육 프로그램을 창설하고 마켓을 여는 등, 부산국제영화제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현실화시키면서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 자리를 지켜야 했다. 그 과정에서 김동호 위원장은 튼튼한 버팀목이 되었다. “칸영화제, 베를린영화제, 베니스영화제의 집행위원장들은 영화를 선정하는 총책임자인 ‘수석프로그래머’의 역할을 겸하고 있지만, 저는 영화 선정엔 전혀 관여 안 합니다. 개막작이나 폐막작도, 프로그래머가 좋다고 하면 저는 안 보고 결정할 때도 있고요.” 대신 그는 정부와 지자체와 기업을 만나 예산을 확보하고, 대외 업무를 통해 국제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전념해왔다. “가장 중요한 업무는 대외 협력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고, 영화제 진행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죠.”
현재 김동호 위원장과 부산국제영화제에게 가장 큰 프로젝트는, 2008년에 착공한 부산영상센터 ‘두레라움’을 성공리에 완성하는 것. 그는 이곳이 단순한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이 아닌,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처럼 한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길 바란다. 부지 선정 과정에서 “반드시 바닷가에 지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 것도 그런 이유다. “영화제도 이제 기반을 닦았고, 영상센터만 준공되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거죠.” 한편 2007년에 설립된 ‘발콘’은 작품성 있는 아시아 영화를 극장, 케이블TV, IPTV를 통해 유통시키는 목적의 콘텐츠 기업. 미국 인디펜던트 무비의 창구인 선댄스 채널 같은, 아시아 영화를 전문으로 하는 ‘PIFF 채널’도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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