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여기저기서 46년이나 지난 베트남 통킹만 사건이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한 언론인이 통킹만 사건을 예로 들며 천안함 사건이 미국측의 자작극이라는 주장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오키나와 기지를 둘러싼 일본내 분위기, 이전 참여정부와는 크게 달라져가는 한반도 분위기 등을 활용해 미국의 동북아 지역에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천안함 사건을 조작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국내에서는 진보 언론계 조차도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다. 그같은 주장에 대한 근거도 별로 없거니와 사건을 폭로한 웨인맷슨이라는 언론인이 다소 신뢰성-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이전에 말도 안되는 보도를 한 적이 있었던 듯-이 떨어지는 것도 한몫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의 어느 방송이라는 말도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영향력이 별로 크지 않은 어느 지역의 작은 케이블 방송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아무튼 미국내에서 이같은 주장도 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아 포스팅해본다.
'美언론인' 웨인 멧슨 "천안함, 자작극" 주장
"제2의 통킹만 사건"…네티즌 찬반 공방
[아시아투데이]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의혹이 여전히 남아 논란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 자작극이라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의 언론인 웨인 멧슨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천안함 침몰 참사는 미 해군 잠수 특공대에 의한 자작극이며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관계를 이용해 일본의 오키나와 해군기지 존속을 도모하고자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천안함은 북한과의 긴장을 의도적으로 고조시키려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의 외교정책에 겉포장만 다른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만난 결과라고 설명한다. 특히 그는 이 자작극을 통킹만 사건과 비교하고 있다. 통킹만 사건은 1964년 베트남 동쪽 통킹만에서 일어난 북베트남 경비정과 미군 구축함의 해상 전투 사건으로 이를 빌미로 미국은 베트남전쟁 개입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훗날 뉴욕타임스에 의해 자작극임이 밝혀졌다. 1971년 뉴욕타임스는 미 국방부의 베트남전 비밀 보고서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해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고 베트남전 당시 국방부 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는 1995년 이 사건이 자작극이었음을 자백했다.
이와 관련해 네티즌 사이에서는 설왕설래가 뜨겁다. 일부 네티즌들은 "북 어뢰 녹슨 부분 위에 써진 손글씨 1번, 어쩐지 찜찜했다", "진실을 파헤치고 단죄해야한다"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일부는 "자작극이라니..북한이 주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아무리 자기나라 군함을 격침시키는 미친 정치가가 있을 수 있냐. 말이 안되질 않냐"며 웨인 멧슨의 말을 외면했다.
베트남 전쟁과 통킹 만 사건(Gulf of Tonkin Incident)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이 독립한 뒤 당시 소련과 중국의 영향을 받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으로 나뉘어져 내전을 벌이자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으려는 미국이 도미노 현상을 우려해 남베트남을 본격 지원하면서 베트남 전쟁은 격화되기 시작했다. 1961년 미국이 J.F케네디 대통령은 남 베트남의 공산화는 동아시아의 공산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남 베트남에 군사적 원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64년 통킹만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국의 존슨정부는 미군을 직접 전투에 참가시키게 되었고 1965년 북베트남에 폭격을 시작하게 되면서 10년에 이르는 기나긴 전쟁은 본격화 됐다.
미국은 1964년 8월 2일과 4일 두차례에 걸쳐 3척의 북베트남 어뢰정이 베트남 통킹 만에서 작전중이던 미 해군 구축함 매독스 호를 향해 어뢰와 기관총으로 선제 공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매독스호가 즉각 반격했고, 주변에 있던 항공모함 타이콘데로거 호와 구축함 터너조이 호도 반격에 가담하여 어뢰정 1척을 격침시키고 2척에 손상을 입혔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명분으로 베트남에 대해 공개적으로 군사 개입을 강화하게 된다. 8월 7일, 미 의회는 사실상 선전포고인 '통킹만 결의'를 의결하였으며, 1965년 2월부터는 B-52 폭격기를 동원한 북폭에 나섰고, 지상군도 파견했다(멜 깁슨이 제작 및 주연한 "We were Soliders"는 바로 이때 최초로 파병된 미 지상군을 묘사한 영화다). 통킹만 사건 이전에도 특수부대 위주로 극비리에 개입해왔었지만, 그것만으로 한계를 느낀 미국이 공개적으로 베트남에 개입하기를 원했고, 그 명분을 이 사건이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미국내에서 전쟁 반대 분위기가 크게 확산되던 1971년 6월 뉴욕타임즈는 통킹만 사건은 베트남 전쟁에 직접 개입하기 위해 미군이 조작한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의 닐 시항 기자는 미 국방부의 7000 페이지에 이르는 베트남전 비밀보고서인 이른바《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를 입수해 1971년 6월 13일부터 연재함으로써 통킹 만 사건이 미국이 조작한 사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도 1995년 2차 공격이 자작극이었음을 자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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