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al science /화 학

화학의 혁명

나 그 네 2012. 3. 1. 10:06

화학혁명

서양과학사에서 중세부터 17세기까지 물질을 다루는 분야는 학문이라기보다는 연금술, 화약제조와 같은 실용적인 측면과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전승된 물질 및 연소의 본질을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측면이 섞인 형태로 이어져 오면서 근대적 과학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었다.

 

 

혁명의 시대와 새로운 화학

이런 상황에서 18세기 화학혁명은 물질에 대한 탐구로서 화학을 근대과학의 한 분야로 이끈 중요한 계기가 됐다. 화학혁명이 진행되던 당시는 미국혁명이나 프랑스혁명과 같은 정치적 혁명이 서양세계를 휩쓸고 있었던 시대였다. 화학혁명의 중심인물인 프랑스의 실험화학자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 1743~1794)는 혁명의 시대에 스스로 혁명주의자라고 선포하면서, 과거의 묵은 이론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했다. 그는 무질서한 과거의 화학법칙들을 질량보존의 법칙, 원소법칙 등으로 정리하여 화학연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산소의 발견 : ‘플로지스톤이 없는 공기’에서 산소로

라부아지에가 활동하던 시대까지 유럽에서는 독일의 슈탈(Georg Ernst Stahl, 1660~1734)이 제기한 플로지스톤설이 연소반응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플로지스톤설에 따르면 하늘과 땅 사이는 공기와 플로지스톤으로 꽉 차 있으며 식물은 플로지스톤을 흡수하면서 생장하고 연소란 공기 중으로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가고 재가 남는 현상이었다. 플로지스톤 이론은 영국의 기체화학자들이 기체현상을 설명하는 원리로도 쓰였다.


화학혁명의 중심인물인 프랑스의 실험화학자 라부아지에.

 

영국의 비국교파 목사인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1733~1804)는 독학으로 기체 화학을 연구했는데, 양조장 가스를 모아 소다수를 만들어 뱃사람이 사용하게 하는 등 여러 기체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붉은 수은재(산화수은)를 가열해 나온 기체가 ‘플로지스톤이 없는 공기’라는 사실과 이 기체가 불꽃을 크게 만들고 쥐의 호흡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기체를 ‘좋은 공기’라고도 불렀다. 그는 식물도 좋은 공기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라부아지에에게 이 기체에 관한 그 동안의 발견내용을 알려주었다. (셸레가 프리스틀리보다 먼저 산소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프리스틀리가 먼저 발표하였기 때문에 산소 발견의 공적은 보통 프리스틀리에게 주어진다.) 라부아지에는 이 기체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 기체를 1777년 Oxygen(산소)라고 명명했다. 이 용어는 ‘산’을 뜻하는 그리스어 oxy와 ‘만들어냄’을 뜻하는 라틴어 genium이 합성된 것으로, ‘산을 생성하는 물질’이라는 의미였다.

 

연소현상과 산소에 대한 당시의 설명.

 

 

정량적 실험과 질량보존의 법칙


질량보존의 법칙은 오늘날 자연과학의 여러 법칙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법칙인데, 이 법칙의 발견에는 라부아지에의 정확한 정량적 실험이 있었다. 라부아지에는 연소현상에서 질량변화를 정확히 측정할 필요성을 느끼고 질량변화 측정실험을 가능한 정밀하게 수행했다. 그는 실제로 당대 가장 정밀한 천칭을 만들어 실험 전후의 모든 실험기구, 내용물의 질량을 정밀하게 측정했다. 물을 넣고 밀폐한 유리그릇(레토르트)을 오랜 시간 가열한 다음 질량을 측정하여 질량의 변화가 없음을 확인한 후 레토르트에 금속을 넣고 가열하여 금속이 금속재로 변화하는 과정에도 질량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레토르트 실험을 체계적으로 계속한 그는 금속재는 금속보다 약간 무거워졌음을 알게 되었고, 증가한 질량은 레토르트 내에서 감소한 공기의 질량과 같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로써 라부아지에는 연소반응에서 발생하거나 소모되는 기체를 모두 모아 정확히 측정하면 반응 전후의 질량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한 후 질량보존의 법칙을 주장하면서 연소 시 플로지스톤이 방출된다는 플로지스톤설을 반박하게 되었다.

 

질량보존의 법칙은 오늘날 자연과학의 여러 법칙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법칙인데, 이 법칙의 발견에는 라부아지에의
정확한 정량적 실험이 있었다. <출처: gettyimages>

 

 

라부아지에의 업적


앞에서 설명한 라부아지에가 이룩한 성과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질량보존의 법칙 수립이다. 라부아지에는 광석에 숯을 넣고 가열할 때, 숯은 광석으로부터 기체(산소)를 빼앗아 탄산가스가 되고 광석은 산화물에서 금속으로 변하는 반응에서 발생한 기체를 모두 포함한 질량을 측정하면 반응 전과 후의 질량이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1789년 [화학 교과서]에서 모든 물질은 순수하면서도 재분해할 수 없는 원소들로 이루어진 화합물이며 원소의 집합으로 수많은 화합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밝히면서 화학반응 과정에서 질량변화가 없다는 자신의 발견을 천명했다.

 

둘째, 산소의 발견을 통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연소현상을 정립했다. 라부아지에는 ‘플로지스톤이 없는 공기’를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여 ‘산소’라고 명명하고, 연소와 산화는 플로지스톤의 소비과정이 아니고 산소와 결합하는 과정임을 밝혔다.

 

셋째, 전통적인 물질이론의 근본이었던 4원소설에서 벗어나 새로운 물질이론의 체계를 세웠다.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가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을 체계화하여 정리한 4원소설은 세상의 모든 물질이 불, 공기, 물, 흙의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졌다는 이론으로, 이후 이천 년 동안 서양 물질이론의 정설이었고 플로지스톤설의 배경이기도 했다. 라부아지에는 [화학 교과서] 제1장에서 원소를 다음 4가지로 분류하면서 4원소설의 틀에서 벗어났다.

1. 단순한 물질: 빛, 열, 산소, 질소, 수소

2. 단순한 비금속 물질: 황, 인, 탄소, 염산, 플루오르, 붕소, 등 산화되어 산을 만드는 원소

3. 단순한 금속 물질: 안티몬, 은, 비스무트, 코발트, 구리, 주석, 철, 망간, 수은, 몰리브덴, 니켈, 금, 백금, 납, 텅스텐, 아연 등 산화되어 산을 중화시키는 염기를 만드는 원소

4. 단순한 물질, 염을 만드는 토질: 석회, 마그네시아, 바라이트, 알루미나, 실리카

물론 라부아지에의 분류 중 일부는 현재 시각으로 볼 때 오류다. 예를 들어 열과 빛을 물질의 일부로 생각한 것이라든지 산소가 모든 산의 필수 구성요소라는 생각은 맞지 않다(염산에는 산소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화학혁명을 이끈 인물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의 저서에서 정리된 용어는 현재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화학의 혁명가, 정열적인 활동과 죽음

라부아지에의 부인 마리 앤 라부아지에가 그린 호흡 실험 장면. 라부아지에는 책, 강연, 그림 등 대중활동을 이용해 자신의 이론을 전파했으며, 부인은 화가로서, 그림, 삽화 실력으로 그를 도왔다.


라부아지에는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고 전파할 때,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널리 알리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책, 강연, 연극, 그림 등 가능한 대중활동을 모두 이용하였다. 14세 연하의 부인 마리 앤 라부아지에(Marie-Anne Lavoisier)는 화가로서, 그녀의 그림, 삽화 실력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라부아지에는 공장 노동자를 위한 제조업방식 개선을 추구하는 급진 개혁가의 길을 걸으며 파리의 가로등과 물 공급을 개선하는 일에도 앞장서는 혁신가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세금징수인 조합의 일원이며 법률가로 활동하며 연구비를 충당하고도 남을 부를 축적한 그는 자코뱅당원에게 가난한 자를 착취한 지주로 고발당했고, 결국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다. 1794년 5월 혁명재판소 법정에 서게 된 그에게 그간의 과학업적을 고려해 달라는 탄원이 있었지만 당시 판사인 코피나르는 “공화국은 과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판결은 집행되어야 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곧 사형을 집행하였다.

 

이에 당시 프랑스 수학자 라그랑주(Joseph Louis Lagrange, 1736~1813)는 “머리를 베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그 두뇌를 길러 내는데는 100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면서 위대한 화학자이자 혁명가인 그의 죽음을 애석해 했다.

 

화학을 포함한 과학연구에서 잘 설계되고 정확한 실험이 단순한 추론이나 관습적인 사고에 의한 허구를 부수는 중요한 도구임을 보여주며 근대화학의 시대를 열었던 라부아지에의 업적은 돌턴(John Dalton, 1766~1844), 멘델레예프(Dmitrii Ivanovich Mendeleev, 1834~1907)등에 의해 보완 정리되고 이어지면서 현대 화학의 기본이론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강한철 / 홍익대학교 화학시스템공학부 교수

자료제공 사이언스올

발행일  2011.12.23

'Natural science > 화 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원소설  (0) 2012.03.01
효도하는 화학  (0) 2012.03.01
Oxygen ( O ), 8 - 산소  (0) 2012.03.01
질소의 순환  (0) 2012.03.01
Nitrogen ( N ), 7 - 질소  (0) 2012.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