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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착(放下着) : 내려놓아라

나 그 네 2018. 1. 24. 12:26

“내려놓아라.
 다 내려놓아라.
 모두 다 내려놓아라.
 그러면 편안해진다”


 잘 아는 분이 있습니다. 아직 세상을 떠날 나이는 아닌데 떠날 준비라도 하듯 “버려야지, 다 버려야지. 모두 다 버리고 가야지.”하고 입버릇처럼 말 하곤 합니다. 그리고는 며칠에 한번 씩 틈을 내어 조금씩, 조금씩 주변정리를 합니다. 옷가지, 신발에서부터 신변용품에 이르기까지 이것저것 갖고 있는 모든 것이 대상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막상 버릴 것을 골라 내 놓고 보면 아깝지 않은 게 없기 때문입니다. 물건도 정이 들어서인지 집었다, 놨다를 되풀이 하게 되니 말입니다. 막상 집어 들고 보면 아까운 생각이 들어 다시 제자리에 놓고 그렇게 하기를 몇 차례, 그러다 보니 버릴 게 없습니다.

이번에는 에라, 용기를 내어 체념을 하고 종이 백에 담아 분리수거장으로 가져갑니다. 그는 ‘시원 섭섭’이란 그럴때 느끼는 감정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요긴하던 물건들인데도 그것이 없어도 조금도 불편함을 못 느낄뿐더러 다시 생각조치 나지 않더라고 술회합니다.


한 스님이 탁발(托鉢)을 위해 험한 산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사람 살려!”하는 절박한 비명 소리가 길 아래서 들려옵니다. 깜짝 놀라 밑을 내려다보니 어떤 사람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애타게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황급히 다가갔습니다. 인기척이 나자 “나는 장님입니다. 산 너머로 양식을 구하러 가던 중인데 발을 헛디뎌 미끄러져 이렇게 매달려 있어요. 제발 빨리 나 좀 살려주시오. 아이구ˑˑˑ.” 스님이 가까이 가 보니 장님은 땀에 젖어 사색이 되었고 다행히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는 손을 놔도 다치지는 않을 정도로 땅에서 그리 높지는 않았습니다.

스님은 일단 안심을 하고 큰소리로 외칩니다. “손을 놓으시오. 떨어져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어서 손을 놓으시오!” 그러나 장님은 “손을 놓으면 벼랑으로 떨어져 죽는데 어찌 손을 놓으란 말입니까. 제발 좀 살려주시오!” 하고 목이 메어 거듭 애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다시 소리칩니다. “살고 싶으면 당장 손을 놓으시오. 그러면 살 수 있단 말이오. 어서!” 더 이상 못 버티게 된 장님은 할 수 없이 손을 놔 버렸습니다. 그러자 장님은 땅에 툭,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졌습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장님은 졸지 간에 있었던 일을 비로소 깨닫고 땀을 닦으며 멋쩍게 고마운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산사의 스님들이 흔히 화두에 올려놓고 즐겨 주고 받는 ‘방하착(放下着)’의 설화(說話)입니다.

방화착이란 모든 집착을 내려 놓는다는 뜻입니다.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욕망과 집착을 모두 내려 놓음으로써 번뇌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바로 방하착(放下着)인 것입니다.

스님들이 속세를 떠나 출가(出家)를 할 때 먼저 행하는 인연 끊기의 첫 번째가 바로 방하착의 실천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지 않고 고뇌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삭발을 할 자격이 없고 당연히 스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내려놓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겠습니까? 출가한 스님들도 애당초 그것이 강을 건너듯 어려운 일이었거늘 하물며 사바세계의 미혹한 중생들이 어찌 마음을 비우고 욕망을 내려놓을 수 가 있을까. 내려놓는다 함은 바꿔 말해 버린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말이 쉬워 내려놓는다 하지만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마음을 비우고 다 내려놓는 것은 웬만한 결심이 아니고서는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일입니다. 집안의 하찮은 물건도 버리려면 아깝거늘 머릿속의 백팔번뇌, 오만가지 망상과 집착을 무슨 수로 내려 놓고 버릴 수가 있단 말입니까. 흔히 백팔번뇌(百八煩惱)를 이야기 하지만 부처님은 중생의 번뇌 병이 8만4천 가지라서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만든 것이 8만 4천 법문, 즉 팔만대장경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마음의 병은 정말 엄청나게 많기도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으로 삽니다. 무엇인가 하고 싶고 무엇인가 갖고 싶은 욕망, 그 욕망이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되고 그것이 바로 삶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 권세를 누리고 싶은 욕망, 명예를 얻고 싶은 욕망, 온갖 물건을 갖고 싶은 욕망, 이성에 대한 욕망ˑˑˑ등등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갖지 못한 사람은 갖기 위해,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갖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밤잠을 못자며 번민하는 것은 모두 그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내려 놓으라’는 말씀이 어찌 물질만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들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속의 크고 작은 것들, 그것들마저 다 내려놓으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자신이 꿈꿔 온 것에 대한 이루지 못한 아쉬움, 사람에 대한 섭섭함, 원망, 미움, 분노, 증오도 다 내려놓으라는 말씀입니다. 또 빠뜨려서 안 될 것은 성취에서 얻은 오만함도 다 내려놓으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처럼 모든 은원(恩怨)을 내려 놓을 때 사람은 비로소 편안함을 얻게 됩니다. 그것을 위해 종교가 있고 그것 때문에 기도하고 절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제 잘난 멋에 취해 눈을 뜨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앞 못 보는 장님과 다를 게 없습니다. 장님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발버둥을 치듯이 온갖 욕망에 사로 잡혀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썩은 동아줄을 생명줄이라고 잡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눈뜬 봉사, 청맹과니입니다.

카톡으로 받은 우스갯소리 하나 옮겨 적겠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저승에서 이병철 회장을 만났습니다. “형님, 급해서 그러는데 5만원만 꾸어주십시오.” 이 회장 가라사대 “이 사람아, 나도 없어. 올 때 한 푼도 못 가져왔어.”


蛇足. 중국 당 나라 때 엄양(嚴陽)이란 스님이 고명한 조주(趙州ˑ778~897)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스님 저는 한물건도 갖고 있지 않아 내려 놓을게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하고 여쭈었습니다.
조주스님 왈 “없으면 다시 지고 가!”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그것이 ‘착득거(着得去)’입니다. 방하착(放下着)의 역화두(逆話頭)이지요.

 
- 김영회 [김영회 칼럼] 여성경제신문 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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