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혜는 서울대 회화과와 파리 국립미술학교 회화부를 졸업했다. 그 역시 초기엔 아크릴 물감과 수채 물감 들고 꽃과 나무를 그리던 평범한 화가였다. 1997년 어느 날 컴퓨터 앞에 앉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가 새로운 작업의 세계로 들어가게 됐다. “당시 도스체계 컴퓨터의 원시적 도구인 그림판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이미지를 가지고 놀고 있었어요.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이미지의 신속하고 무궁한 변신에 매료됐어요. 화면은 픽셀로 이뤄진 우주였고, 그 픽셀들이 싹이 돋아 자라나고 증식하는 모습이 마치 자연계처럼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그는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다. 시범을 보여달라고 하자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포토샵에는 네모 모양의 픽셀(pixel)이 하나 떠 있다. 그는 네모의 가운데 빈 공간에 줄을 긋기도 하고, 카피, 페이스트, 인버트 등 버튼을 눌러 픽셀을 수십 개, 수백 개로 증식하기도 하고, 색을 순식간에 바꾸고 안팎의 색을 뒤집기도 했다. 1초 간격으로 이미지와 색깔이 순식간에 휙휙 바뀌는데, 어느 순간 그가 말했다. “자, 바로 이런 이미지, 이 거 어때요? 막 하다 보면, 이렇게 어느 순간에 마음에 와 닿는 이미지가 나와요.” 그럼 그 때 그는 프린트 버튼을 누른다. 그 이미지가 알루미늄 판이나 아크릴판에 인쇄되기도 하고, 어느 건물 로비의 벽화로 인쇄되기도 한다. 픽셀이 마치 세포처럼 포토샵 안에서 자동으로 번식하다가, 어느 순간 홍승혜의 마음에 들었을 때 번식을 멈추고 세상에 생명체로 태어나는 셈이다.
그는 “원래 나는 무엇을 어떻게 그리느냐 하는 문제 보다는, 공간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리는 대상이 공간 속에 어떻게 배치되어있고 다른 물체와 어떻게 관계를 가지는가가 원래 저의 관심이었어요.” 공간을 중시하는 홍승혜에게 미술은 곧 ‘공간을 요리하는 것’이고, 컴퓨터는 공간을 요리하는 이상적인 도구다. 그는 작품 설치를 의뢰 받고 나면 그 작품이 설치될 공간을 우선 연구하고, 그 공간을 새롭게 보이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다. 그래서 그에게 미술은 매우 지적인 행위다.
강남 교보타워 로비, 삼성물산 로비, 서울산업대 도서관 등에 그의 벽화들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네모와 막대기가 나란히 줄을 서기도 하고 서로 뭉쳐 있기도 한 기하학적 형태다. 하지만 차갑지 않다. 미술평론가 윤난지는 홍승혜의 작품을 가리켜 “차가운 디지털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그 우연적인 형태나 섬세하게 조합된 색채를 통해 클릭하는 손끝의 체온을 감지하게 한다”고 했다. 그의 ‘유기적 기하학(Organic Geometry)’이라는 작품 시리즈 제목부터가 이런 이중성을 담고 있다. 자연(유기적)과 기계(기하학), 따뜻함(유기적)과 차가움(기하학), 상반된 두 개념이 함께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